반도네온이 쏟아낸 블루
―정재학(1974∼)
항구의 여름, 반도네온이 파란 바람을 흘리고 있었다 홍수에 떠내려간 길을 찾는다 길이 있던 곳에는 버드나무 하나 푸른 선율에 흔들리며 서 있었다 버들을 안자 가늘고 어여쁜 가지들이 나를 감싼다 그녀의 이빨들이 출렁이다가 내 두 눈에 녹아 흐른다 내 몸에서 가장 하얗게 빛나는 그곳에 모음(母音)들이 쏟아진다 어린 버드나무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깊은 바다였다니… 나는 그녀의 어디쯤 잠기고 있는 것일까 깊이를 알 수 없이 짙은 코발트블루, 수많은 글자들이 가득한 바다, 나는 한 번에 모든 자음(子音)이 될 순 없었다 부끄러웠다 죽어서도 그녀의 밑바닥에 다다르지 못한 채 유랑할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반도네온의 풍성한 화음처럼 퍼지면서 겹쳐진다 파란 바람이 불었다 파란 냄새가 난다 버드나무 한그루 내 이마를 쓰다듬고 있었다
빛은 파동이며 입자라지. 음악은 빛과 같다. 반도네온 연주 소리가 바람과 버드나무와 ‘이빨들’을 가진 어린 처녀와 바다로 변신하며 시인에게 시심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이 신화적으로 펼쳐진다. 프시케에 대한 에로스의 애타는 사랑을 보는 듯한,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뮤즈에 대한 시인의 애달픈 사랑.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