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왕국 대한민국
올해 국민이 이용한 택배 16억6000만 상자를 쌓아올리면 그 높이가 48만 km에 이른다. 지구에서 달(38만 km)까지 닿고도 남는 거리다.
택배는 국민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직장인 유모 씨(31·여)는 출퇴근길 스마트폰으로 온라인쇼핑몰에서 화장품을 산다. 집에선 홈쇼핑에서 속옷과 주방용품, 해외 직접구매(직구)로 자녀 옷을 구매한다. 급하게 소포를 보내야 할 땐 편의점 택배를 이용한다.
택배 산업도 진화하고 있다. 직구 열풍으로 해외배송 대행업체 몰테일의 배송대행 건수는 2010년 약 8만 건에서 올해 약 200만 건으로 25배 뛰었다. 서울시는 택배 기사를 직접 대면하기 부담스러워하는 여성들을 위해 지정된 사물함에 배송할 물건을 넣어주는 ‘여성 안심택배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해외에선 무인(無人) 비행체인 드론을 이용한 택배도 등장했다. 올해 9월 독일 운송회사 DHL은 헬리콥터를 이용해 의약품을 배달하는 데 성공했다. 아마존과 구글도 드론을 이용한 택배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 국내 배송 1년에 16억건… 국민 1인당 32회꼴 이용 ▼
국내 1위 택배업체 CJ대한통운의 대전 메인허브터미널 물류센터는 대지 면적만 7만 m²(약 2만1200평)에 이른다. CJ대한통운 제공
‘시민들의 손발이 되어 짐을 날라주는 메쎈저 미스터 미창이 15일 서울과 부산에 등장하였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가 서울과 부산에 중앙하급소를 개설해 수하물과 이삿짐 등 하물의 운송과 일시보관 등 업무를 개시했다고 전하고 있다. 오늘날 택배와 거의 동일한 형태의 서비스로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사례다. 1960년대 초는 전화기도 보기 힘들었던 시절이다.
하지만 대체 언제부터 택배가 이렇게 일상적이 됐는지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 변천사를 한번 짚어보자.
전 세계적으로 택배업의 효시는 1907년 8월 당시 19세였던 짐 케이시와 18세 클로드 라이언이 100달러를 빌려 미국 시애틀에 세운 ‘아메리칸 메신저 컴퍼니’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1919년 UPS(United Parcel Service)로 이름을 바꾼 뒤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물류회사 중 하나로 남아 있다.
1980년대 소규모 운송업체의 중심은 서울 동대문 의류 도매상가로 옮겨간다. ‘특송업체’라는 이름을 단 업체들이 주로 의류를 주문자에게 운송해주는 서비스를 했다. 일부 업체는 전국적 조직망을 갖추기도 했다. 이 업체들 가운데 1987년 ‘한국특송’이 최초로 ‘특송’이라는 브랜드로 영업을 시작했다.
1992년에는 ‘택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바로 한진이 ‘파발마’라는 브랜드로 택배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듬해 곧바로 ‘대한통운특송’이 나왔다. 뒤를 이어 현대택배가 등장했다. 우체국도 1999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택배산업은 1995년 이후 고도 성장기를 맞는다. 1995년 한국에서 택배로 배달된 총 물량은 약 1035만 상자. 5년 만인 2000년에는 이 물량이 약 8500만 상자로 8배 이상으로 늘었다. 국민 1인당 연간 2회가량 이용한 셈이다.
택배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단연 온라인, 홈쇼핑의 등장이다. 1990년대 말 인터넷 서점이 등장한 데 이어 2000년대 들어서면서 케이블TV와 함께 홈쇼핑이 나오면서 택배 물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LG홈쇼핑, 삼구홈쇼핑(현 CJ홈쇼핑),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 현대홈쇼핑, 농수산홈쇼핑 등이 5강 구도를 갖추고 패션상품을 중심으로 인터넷 쇼핑몰이 급격히 늘면서 택배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대의 성장률을 보이며 급성장한다. 올해 국내 택배 물동량 예상치는 약 16억 상자다. 2000년과 비교해 19배 가까이 커진 셈이다.
한때 스키와 한약 택배도 등장
2000년대 들어서는 택배업체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특히 개인 고객을 잡기 위해 화물의 종류와 고객의 필요에 따라 특성화된 택배상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키·바캉스택배 경조금택배 김치택배 한약택배 타임택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스키·바캉스택배는 스키장에 가거나 캠핑 등 바캉스를 갈 때 필요한 물품을 미리 목적지에 보내놓으면 정해진 날짜에 현장에서 찾아 쓸 수 있는 서비스였다. 경조금택배는 서울에 사는 사람이 먼 지방에서 벌어진 경조사에 직접 가기 어려울 경우 대신 경조금을 내주는 서비스였다. 김치나 한약택배는 말 그대로 김치나 한약을 스티로폼 박스로 포장해 배달해주는 것이었다. 타임택배는 미리 정해놓은 시간에 맞춰 배달을 해주는 서비스다.
하지만 대부분은 한때 잠깐 시행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가구 2차’ 시대가 되거나 자동이체 서비스가 발달하고 김장이나 한약을 직접 만들어 먹는 사람이 줄어드는 등 여러 문화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전국 특산물 이제 안방에서…
택배로 인해 한국인의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웬만한 의류와 잡화 등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집에서 받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지방 특산물을 안방에서 쉽게 맛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포항 과메기, 음성 절인배추, 해남 황토고구마, 지리산 고로쇠물, 안흥 찐빵 등 과거에는 그 지역에 가야만 맛볼 수 있었던 특산품들을 언제든 주문해서 맛볼 수 있게 됐다. 특산품뿐 아니라 각 지역의 특색 있는 맛집도 전국으로 음식을 배달하며 손님을 늘려갔다. 결국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다는 단점이 점점 극복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뜨는 해가 있으면 지는 별도 있는 법. 택배 때문에 사라진 것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철도소화물 운송 서비스다. 1899년 한국철도와 함께 시작된 철도소화물 운송은 107년 만인 2006년 5월 1일부터 중단됐다. 택배 이용이 급증하면서 이용량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990년 2600만 상자이던 운송량이 2004년 490만 개로 급감하면서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냈다.
동네 서점이나 대규모 전자상가는 급격히 몰락했다.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과거에 비해 찾는 사람이 현격히 줄었다.
‘감동’도 배달…
이제 택배는 단순히 ‘빠르고 정확하다’는 수준을 넘어 고객에게 ‘감동’을 주려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쿠팡맨’이다.
쿠팡맨은 온라인 유통업체 ‘쿠팡’이 제품 배송을 택배업체에 맡기지 않고 업계 최초로 자체 배송 인력을 확보해 이들이 직접 물건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서울 및 6대 광역시에서 900여 명의 쿠팡맨이 활동 중이다. 유아용품 생필품 애완용품 등의 배달을 주로 맡고 있다. 쿠팡맨은 엄밀히 말하면 택배업이 아니라 자체 물품 배달 서비스지만 택배업계에도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이 화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감동 서비스’ 때문. 물건에 손 편지를 함께 남기거나 고객이 부재중일 때는 배송한 상품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는 등 서비스에 감동을 받았다는 사연들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쿠팡은 고객과 접촉할 일이 없는 영업본부 직원이 자원해 상품을 직접 배달하는 ‘와우딜리버리’와 직원이 고객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손 편지를 보내는 ‘와우레터’ 활동도 벌이고 있다.
특히 ‘와우레터’가 호응을 얻어 올해 7월부터는 쿠팡의 전 임직원이 하루 한 통 이상 손 편지를 작성해 고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쿠팡이 11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등으로부터 3억 달러(약 3311억 원)의 투자를 받은 것도 이런 서비스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자들은 쿠팡 측에 “상품 판매부터 배송까지 직접 책임지는 새로운 이커머스(e-commerce) 모델을 구축한 데다 당일 배송을 위한 물류 및 배송 인프라에 투자를 많이 한 것을 높이 평가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다른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택배업체들도 고부가가치 수익모델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의약품 등에 대한 특수배송 분야다. 주로 해외 네트워크를 갖춘 외국계 배송업체들이 주력하고 있다.
DHL은 올해 10월 오송국제바이오산업엑스포에서 ‘메디컬 익스프레스’ 서비스를 선보였다. 의약 분야에서는 줄기세포나 바이오 분야의 시약, 임상약 등 시간과 온도에 민감한 물품을 배송해야 할 일이 많다. 이런 물품을 배송하기 위해선 특수 냉장 포장재나 초저온을 유지하기 위한 질소탱크, 특수 온도계 등이 필요하다. 물론 제시간에 맞춘 배송은 필수. 결국 일반 택배보다는 많은 노력과 기술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김성규 sunggyu@donga.com·강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