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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최중경]‘선한 의도, 나쁜 결과 정책’… 피해자들은 결국 약자

입력 | 2014-12-27 03:00:00


최중경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동국대 석좌교수

정책을 제대로 수립해서 효과적으로 집행하려면 이해 관계자들의 행동 양식을 잘 알아야 한다. 정책이 의도한 방향으로 이해 관계자들이 움직여 줘야 좋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정의의 사도 ‘슈퍼맨’ 역할을 자임하며 약자를 위한 정책을 만들지만 행동 양식에 관한 이해가 부족해 정책 의도와 정반대 결과를 낳는 사례가 적지 않다. 비정규직 ‘2년 후 정규직 전환 의무 조항’은 실제로는 ‘2년 후 해고 조항’으로 작동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초래했다. 정책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고용주가 정반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요인으로 공포, 자기 이익, 명예를 제시했다.

이 투키디데스 행동 요인에 따라 의사 결정을 하는 기업체 사장을 상상해 보자.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고 싶어도 채산이 맞지 않으면 회사 부도라는 ‘공포’ 때문에 해 줄 수가 없다. 또 비정규직으로 일하겠다는 취업 희망자가 있는 한 ‘자기 이익’을 위해 2년 된 비정규직을 해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설사 큰맘 먹고 정규직으로 전환해 줘도 ‘명예’를 얻을 가능성은 없다. 이렇게 보면 고용주를 비난할 논거는 없어 보인다.

최저임금제도 역시 선한 의도를 가졌지만 결과는 좋지 않은 정책이다. 선진국에서도 최저임금제도는 한계선상에 있는 노동자를 실직자로 내몰기 때문에 논란이 많다. 최근 아파트 경비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할 것을 의무화함에 따라 해고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예견된 일이다.

한 아파트에서 한 달에 관리비 몇 천 원만 더 부담하면 당장은 해결된다고 하지만 최저임금 수준이 계속 인상될 것이 예상된다면 입주민들로서는 이참에 경비원 수를 줄이겠다는 마음이 들 것이고 만약 입주민들이 그렇게 결정한다면 달리 개입할 방도는 없다.

세상이 따뜻한 정으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명분만 추구하는 경우에도 정책 효과는 이렇게 결과가 거꾸로 나타난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었을 때 규제를 도입하는 목적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이 침체되면 도입했던 규제를 푸는 것이 논리적이다. 부유층의 투기를 막아 서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규제를 계속하면 경기침체 장기화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결국 서민이고 취약 계층인 건설 현장 노동자의 삶이 가장 고달프다.

빈곤층 학생의 자존감을 지켜 주려 도입한 100% 무상급식 때문에 빈곤층 학생을 위한 특별 수업비가 줄지 않았나. 껍데기를 위해 알맹이를 버리는 격이다. 이뿐인가.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국회 폭력을 없애 국회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은 국회마비법이 되어 경제 활성화 법률을 2년간 계류시키며 대한민국의 경제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도 의도와 결과가 다른 정책 사례이다.

정치인은 정책이 가져올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사람이 항상 착하게 행동하리라 기대하거나 명분에 집착하면 결과가 엉뚱해질 뿐이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도 사람의 행동 양식에 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얻는다’라는 이상적인 사회는 천사들이 사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무상 의료를 실시하는 영국에서 환자들이 치료를 제때에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것은 무상 진료를 받으려는 사람이 넘쳐난 데서 비롯됐다. 내 얼굴의 여드름 치료가 남의 부러진 다리 수술보다 급한 것이 사람의 본성은 아닐지라도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는 그렇게 만든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세계적인 모범 사례다. 무상 치료와 환자 부담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약자를 위한다고 무상 치료 비중을 확대해 균형을 잃으면 과잉 진료 청구 때문에 의료 시스템이 마비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후진국 어린이들을 강제노동에서 해방시킨다는 훌륭한 명분으로 선진국 의회가 어린이를 고용해 만든 제품 수입을 규제하자 일자리를 잃은 어린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먹을 것을 찾게 됐다. 정치인은 의도와 결과가 다른 정책 사례들을 모아 원인을 분석하고 통렬히 성찰해서 ‘진짜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하늘에 ‘무늬만 슈퍼맨’이 많이 날아다니면 국민의 삶이 정말 고달파진다.

최중경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동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