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외교관 주인 따라 4대륙 이주… 애완견 토토의 고백
김은숙 씨(왼쪽)가 애견 토토를 안고 외교관을 지낸 남편 신창식 씨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 부부는 “토토가 있어 이역만리 외국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4대륙을 돈 견공 토토. 시추와 몰티즈의 혼종으로 2001년 3월 태어나 13세가 넘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영문도 모르고 난 엄마와 다섯 형제와 떨어져 새로운 식구들과 살아야 했다. 내 본능은 가족 중에 누가 힘이 가장 세느냐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바로 나왔다. 엄마가 가장 영향력이 컸다. 보통 아빠들이 힘이 센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아니다. 우리 견공 세계에서도 비슷하다. 난 바로 엄마에게 달라붙었다. 엄마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녔다. 그렇다고 엄마만 쫓아다닐 순 없다. 엄마가 없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그래야 뭐라도 하나 더 얻어먹을 수 있다.
날 강하 누나 때문에 데리고 왔다고 했는데 실제론 산하 누나와 더 많은 시간을 가졌다. 강하 누나는 고3이었고 산하 누나는 대학생이라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다. 산하 누나는 공부를 힘들어했다.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에 와서 날 꼭 껴안고 오랫동안 있곤 했다. 강하 누나는 나와 막내 경쟁을 하는 듯 늘 나를 약 올렸다. 과자라도 생기면 그냥 주면 될 텐데 꼭 줄 듯 말 듯하다 건네줬다. 맛있게 먹기는 하지만 자존심이 좀 상한다. 그렇지만 이런 강하 누나가 싫진 않았다. 날 안아 줄 때면 나에 대한 사랑이 어떤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1년여가 지났을까 한일 월드컵으로 온 세상이 빨간 물결로 가득했던 2002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나는 태어나서 처음 ‘지옥’을 경험했다. 아빠가 에콰도르 키토로 발령받아 함께 가는데 온갖 주사를 다 맞아야 했다. 비행기 객실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가지 못하고 조그만 케이지에 갇혀 12시간 동안 짐칸에서 버텨야 했다. 엄마 아빠는 없지, 비행기 소리는 크지. 경유지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엄마 아빠를 만날 때 내 몰골은 형편없었다. 남자로 태어나 힘 좀 쓴다고 생각했는데 눈물 콧물에 오줌까지 지렸으니. 로스앤젤레스에서 목욕을 하고서야 에콰도르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이번엔 케이지 속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편안하게 갔다.
여기서 내가 어떻게 해외여행에 나갈 수 있었는지를 알아봤다. 비행기를 탈 때에는 성인 1명에 애완동물 한 마리만 데려갈 수 있다. 비행 가능 동물은 개와 고양이 새 딱 세 종류다. 애완동물과 함께 여행하려면 첫째,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항공사에 연락해 운송 승인을 받아야 한다. 둘째, 여행할 국가의 동물 반입 규정을 확인한 뒤 검역 관련 서류를 준비한다. 셋째, 잠금 장치가 있고 바닥이 밀폐된 케이지를 준비한다. 애완동물은 케이지 안에서만 여행할 수 있다. 기내에 반입해 함께 여행하려면 케이지의 무게는 5kg, 길이는 115cm 미만이어야 한다. 위탁 수하물로 부칠 경우는 32kg 미만의 견고한 케이지가 필요하다. 넷째, 공항에서 애완동물 수속을 하면서 미리 준비한 광견병 예방접종 증명서 및 건강진단서를 제출해 검역 증명서를 발급받는다. 마지막으로 애완동물 관련 별도의 추가 수하물 요금을 낸다. 그러고 탑승하면 된다. 아빠는 나와 함께 가기 위해 이 모든 일을 했다.
키토에서는 엄마와 보낸 시간이 많았다. 아빠는 외교관이라 늘 사람들을 만나고 다녀 저녁 늦게 들어왔다. 엄마는 소녀 시절 꿈꾸었던 안데스 산맥의 잉카문명 탐방에 열심이었다. 언제나 나와 함께했다. 천식을 앓았던 엄마는 안데스의 고원을 나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얼굴도 밝아지고 건강도 좋아졌다. 난 적도 아래 고원인 키토의 햇볕이 좋았다. 집에서도 자리를 옮겨 다니며 햇볕을 즐겼다.
2005년 아빠가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으로 발령이 났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아빠가 엉엉 울고 있었다. 나 때문이었다. 내 혈청 검사를 6개월 전에 미리 받아 이탈리아에 신고해야 하는데 인사 발령이 난 뒤 하려고 하니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이리저리 뛰어다녀 결국 함께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이번엔 나 혼자 갔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엄마와 바티칸 뒷동네 숲 속을 거닌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2006년엔 아프리카 수단의 하르툼에 갔다. 청나일 강변에 살았는데 섭씨 50도가 넘게 올라가는 더위가 싫었다. 너무 더워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모기장 놀이를 한 기억이 많다. 밤에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엄마가 마련해준 하얀 모기장이었는데 돌돌 말면서 노는 게 재밌었다.
2008년 일본 센다이(仙臺)로 갈 땐 한국에 들러 두 달 동안 동물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일본 검역이 까다로웠는데 엄마 아빤 먼저 가야 했고 산하 강하 누나는 기숙사에 있어서 날 돌볼 수가 없었다. 외로웠지만 산하 누나가 자주 와서 산책을 시켜줘 버틸 수 있었다.
일본에서 2011년 2월 말 돌아왔다. 아빤 잔무를 처리하느라 3월 초 돌아왔다. 그러고 며칠 안 된 3월 11일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로 우리가 살던 센다이에 바닷물이 넘쳐 쑥대밭이 됐다. 엄마는 “하늘이 도왔다”고 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영영 못 돌아올 뻔했다. 참 운이 좋았다.
김은숙 씨가 13년 넘게 4개 대륙을 돌며 애견 토토와 함께한 경험담을 묶은 책 ‘토토, 오늘도 고마워’의 표지.
▼ “어린아이들, 애견과 함께 있을때 혈압-심박수 안정적” ▼
중학교 2학년 A 군(경기 파주시)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인 2010년 정서 불안으로 약 6개월간 심리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심리상담사가 강아지를 키우라는 조언에 따라 몰티즈를 입양해 4년 넘게 키우고 있다. A 군은 현재 밝고 명랑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인기도 좋다.
개를 키우면 어떤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영국에서는 50% 이상의 가정에 반려동물이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나날이 애완동물, 특히 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많은 과학적 연구에서 애견과 함께 사는 사람은 건강상의 문제로 의사를 찾는 일이 별로 없다고 나온다. 애견과의 산책이 필수적이라 심혈관계 질환이 현저하게 줄었다.
특히 개는 사람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한 연구에서는 친근한 개가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비교해 휴식 상태와 큰 소리로 책을 읽을 때 아이들의 혈압과 심박수를 측정했는데 결과는 개가 있는 경우 혈압이 현저히 낮아지는 효과를 보였다. 사람이 속상하거나 불안하면 신체는 ‘도피 또는 투쟁’의 반응을 보인다. 이 기전은 교감신경을 활성화해 혈압, 심박수 및 호흡수를 증가시키고 호르몬 변화를 일으킨다. 친숙한 동물과 함께 있으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얘기다.
개는 아이에게 사회발달과 감정기술도 향상시킨다. 개는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인다. 이에 따라 특히 아이가 속상해하거나 부모의 눈 밖에 났거나 학교에서 문제가 있을 때 애견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자신의 문제를 애완동물에게 말한다. 개는 가족의 일원으로 간주되고 가정 내 사회적 작용을 더욱 촉진시킨다. 부모 모두 일을 하는 가정에서 아이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미국의 아동심리학자인 보리스 레빈슨은 우연히 자신의 애완견을 보고 심리적 상해를 입은 아동이 호의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동물매개치료의 창립자가 됐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해 적대적이고 말이 없던 아이가 개와 함께 놀면서 바뀌었다. 반려동물은 아이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사회접촉을 주었고 이를 통해 아이가 걱정과 근심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애견이 아이와 사회의 중립적인 매개체가 되는 셈이다.
애완동물은 노인의 상실감 치유에도 큰 도움이 된다. 직업이나 배우자의 상실은 노인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줘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인들의 사별에 대한 영향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애완동물을 기른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우울증을 적게 겪었다.
이태영 반딧불 동물병원(경기 고양시 일산) 원장은 “수의사는 치료에만 집중해 인간과 동물의 사회성에 대해선 잘 모른다. 다만, 애견과 함께 동물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마치 가족이 아픈 것처럼 걱정하고 슬퍼한다. 개를 한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