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34세 여성 미혼율 5.3%→29.1% 급등 ● “명문대 출신은 부담, 변호사는 너무 따져 비호감” ● 에이스는 ‘31세 이하, 160~165cm, 막내며느리 얼굴’ ● 많이 이룰수록 좋은 사람 만난다? 착각!
BBC방송 드라마 ‘셜록’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른 베네딕트 컴버배치(38)가 얼마 전 약혼을 발표했다. 그가 택한 여성은 영국의 골드미스, 소피 헌터. 그녀는 1978년생으로 영국 명문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연극 연출가, 영화 제작자, 배우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재원이다.
대한민국의 이아정(가명) 씨도 소피와 같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를 졸업한 대기업 차장이다. 대학 때부터 사귄 동갑내기 남자친구는 입사 1년차 때 헤어졌다. 이씨는 회사 업무를 익히느라 너무 바빠 졸업을 앞둔 남자친구의 진로 고민을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너처럼 바쁜 여자와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 이씨는 남자친구가 유학을 떠나며 했던 이 말이 요즘도 가끔씩 떠오른다고 했다.
그 후 몇 번 연애를 했지만 결혼에 이르진 못했다. 결혼보다 중요한 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 직장 13년차. ‘한국 나이’ 38세가 됐다. 이씨는 공부나 일에 늘 성실했던 것처럼, 결혼에도 성실하게 임해보자는 마음에 지난가을 몇몇 결혼정보업체에 연락했다.
이른바 알파걸 시대다. 명문대나 각종 고등고시의 여성 합격률은 해마다 높아진다. 2014년 사법시험과 5급 공무원 공채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은 각각 33.3%와 42.1%. 전년에 비해 다소 주춤했지만, 전반적인 여성 상승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가을 약혼을 발표한 드라마 ‘셜록 홈스’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소피 헌터. 소피는 30대 후반에 A급 신랑을 만났지만, 한국의 골드미스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맞선시장의 평가다.
괜찮은 남자가 없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골드미스, 즉 결혼하지 않은 고소득 30대 여성도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50대인 1956~60년생 여성이 30~34세였을 때 미혼율은 5.3%에 지나지 않았으나 1966~70년생은 10.5%, 1976~80년생은 29.1%로 수직 상승했다.
‘결혼파업, 30대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30~39세 미혼여성 50여 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저자들은 “만나본 여성 모두 ‘괜찮은 남자가 없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녀들이 말하는 ‘괜찮은 남자’란 어떤 남자일까. 저자들은 이렇게 요약한다.
하지만 맞선 시장에서 여성들의 이런 바람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로 치부되기 일쑤다. 홍유진 대명위드윈 부대표는 “맞선 시장에선 결혼 유형을 초혼, 만혼, 재혼, 황혼재혼으로 구분하는데, 이중 가장 어려운 게 골드미스가 속한 만혼”이라며 “내 조건과 상대 조건의 불일치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불일치’는 어디서 올까. 커플매니저들에 따르면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남자가 골드미스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나이 든 여자보다는 젊은 여자를 선호한다. 홍 부대표는 “나이는 30대 중반이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능력 출중한 여성과, 20대 후반의 지방대 출신 여성 중 선택하라고 하면 열에 여덟은 후자를 택한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나는 늘 여자 나이 서른셋 전에는 결혼하라고 조언한다”고 덧붙였다.
“출산 걱정 때문에 그래요. 대부분의 남자는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만약 애 못 낳으면 책임질 겁니까?’ 하면 저희도 더는 30대 중후반 여성을 들이밀기가 어렵죠. 남자가 괜찮다고 해도, 부모가 손자 못 보는 것 아니냐며 더 꺼리고요.”
‘불일치’의 두 번째 요인은 알파걸이 요구하는 조건에 부응하는 후보가 드물다는 것이다. 10년 경력의 성혼전문매니저 최보나 원장은 “골드미스들은 자기보다 두세 살 많은 남자를 원하지만, 그 나이의 괜찮은 남자는 이미 다 장가갔다. 안 갔더라도 더 어린 여자를 찾는다”고 했다.
“30대 중반이 돼도 결혼을 안 한 여자분들, 학벌이나 직업이 정말 쟁쟁하잖아요. 그러니 그보다 학벌 좋고 소득 높은 남자를 찾기가 힘들죠. 설령 그런 남자가 있더라도 그들은 자기가 능력이 되니까 굳이 돈 버는 여자를 원하지도 않고요.”
골드미스의 ‘성공 벌점’
여성의 고(高)스펙이 오히려 장애로 작용하는 셈. 커플매니저들의 말을 모아보면 이렇다. 명문대 학벌의 여성에 대해 남자들은 자존심 상하거나 부담스러워하고, 음악이나 미술 등 예술을 전공한 여자는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일 가능성이 높아’ 인기가 없다. 여변호사는 너무 똑똑하고 따박따박 따지기 좋아해 아냇감으로 별로고, 여자 박사도 요즘 강사 자리조차 하늘의 별 따기라 달가워하지 않는다. 여기자는 아예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 여의사는 그나마 좀 낫다.
사회적 성취도가 높은 여성이 결혼시장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이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프린스턴대 사회정치학과 강사인 크리스틴 B 휄런 박사는 저서 ‘골드미스 다이어리’에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자료를 분석해 ‘성공한 여성일수록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결혼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얻었다. 학력 수준과 경제적 지위가 높아진 여성들이 결혼시장에서 짝을 만나지 못하는 ‘성공 벌점(success penalty)’을 받는다는 것이다.
실제 결혼 시장에서 알파걸은 어떤 성공과 실패의 일기를 쓰고 있을까. 기자는 서울 강남에서 10여 년간 상류층을 상대로 맞선을 주선해온 A씨에게서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그는 먼저 “결혼 시장에서 주도권은 남자한테 있다”고 전제했다.
“여자가 뜨뜻미지근할 때 남자가 공들이면 열이면 열, 여자는 전부 다 넘어옵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단순해서 ‘싫다’ 하면 끝이에요. 저희가 이런저런 말로 한 번 더 만나보라고 해도 요지부동이에요. 여자한테는 억울한 일이지만 현실이 그래요. 골드미스와 만나본 남자들이 가장 질려하는 게, 이 여자 분들은 하나하나 따지고 양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명문대를 졸업한 39세 남자 변호사가 36세 여의사를 소개받았다. 둘은 몇 번 만났고, 결혼 얘기가 오갔다. 하지만 남자가 “이 여자와 살면 피곤할 것 같다”며 관계를 정리했다. 이유는 여자가 양보할 줄을 모른다는 것.
그 후 남자는 결혼할 경우 ‘서포팅’을 하겠다는 지방대 출신의 30대 초반 여자와 맞선을 봤다(서포팅이란 혼수로 현금 예단 1억~2억 원과 서울 강남 아파트를 전세 혹은 자가로 마련해주는 것을 뜻한다). 남자는 데이트코스며 식사 메뉴며 사소한 것까지 자신에게 맞춰주는 여자에게 홀딱 빠졌다.
“그런데 결혼 얘기가 구체화하자 여자 엄마가 약속한 서포팅을 못 하겠다고 나온 거예요. 제가 난처했죠. 하지만 남자 엄마가 결혼을 반대하지 못하더라고요. 나이 꽉 찬 아들이 모처럼 맘에 드는 여자를 만난 거니까요. 그 남자 연봉이 2억~3억 원인데 여자 쪽에서 현금 예단 5000만 원만 보내고 결혼했어요.”
최근에는 국내 일류대학을 졸업한 여성 법조인이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두 살 연상의 전문직 남자와 결혼에 성공했다. A씨는 “이 결혼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여자가 정말 예쁘고 어려 보였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운 좋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했다. 그는 “골드미스가 결혼하려면 (남자가) 자신보다 조건이 좀 모자라더라도 받아들이고 양보해야 한다”고 했다.
‘무자녀 돌싱’이 어때서?
“그런 예가 지난해 봄에 결혼한 어느 여의사예요. 남자가 전문직 자격증은 있지만 취업이 안 된 상태였고 시골 출신이었죠. 남자가 직장이나 돈 문제로 결혼 여부를 고민하자 여자가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했어요. 신혼집이나 생활비는 자기가 맡을 테니 남자는 천천히 좋은 직장 알아보라고요. 남자 기 살린다고 현금 예단 1억 원을 보내 시골에 있는 시부모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낸 캐서린 하킴은 저서 ‘매력자본’에서 “전 세계에서 이뤄진 여러 연구결과를 살펴본 결과 ‘애인이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냐’는 질문에 여성은 재력이 있는 높은 지위의 남성을 선호하는 반면, 남성은 매력적인 여성을 원한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하킴에 따르면 이런 경향은 스피드 데이트(각 파트너와 3~10분간 대화하고 새 파트너로 바꾸는 식으로 맞선을 보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스피드 데이트 결과 가장 매력적인 여성이 남성들로부터 가장 많은 데이트 신청을 받았으나, 남성의 경우에는 딱히 그러지 않았다. 하킴은 “여성들은 성적 매력에만 집중해달라고 해도 옷 입는 스타일이나 다른 단서를 통해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나 학력, 소득을 고려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결혼시장에도 이러한 동서고금의 ‘진리’가 적용되나보다. 커플매니저들은 알파걸들에게 “공부나 일에만 전념하지 말고, 외모에도 많이 신경 써라”고 당부한다. 홍 부대표는 “30대 중반이 되도록 꾸밀 줄 모르면 남자들은 자기 관리가 안 된 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통통해도 안 되고 좀 마른 느낌이 인기”라며 “몸무게는 키에서 110을 뺀 숫자를 넘으면 안 된다”고 했다. 최 원장은 “결혼 시장에서 외모는 4단계로 나뉘는데 나이, 키, 얼굴, 맵시 순(順)”이라고 했다.
“나이도 외모에 속합니다. 한국 나이 서른하나 이하가 결혼하기 가장 좋아요. 키는 160~165cm 사이가 적당해요. 이보다 작아도 커도 문제죠. 얼굴은 ‘막내며느릿감’이라고 하면 느낌 오죠? 예쁘고 귀여운 얼굴이 남자들한테 인기가 있어요. 맵시란 소위 ‘강남 간지’를 말해요. 뭘 걸쳐도 명품 같아 보이는 느낌이요.”
결혼 시장엔 ‘무자녀 돌싱’이란 용어가 있다. 아이 없이 이혼한 남녀를 가리키는 말이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상태에서 아이 없이 헤어진 경우도 이에 속한다. 홍 부대표는 “골드미스에게 소개해줄 남자가 많지 않아서 서너 번 맞선을 본 이후에는 돌싱도 만나보라고 권한다”며 “자녀가 없다면 돌싱도 괜찮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최 원장은 “서른여섯부터는 열 번 중 두세 번은 무자녀 돌싱을 소개받는 걸 고려해봤으면 한다”고 했다.
매력 없거나 바람둥이거나
2013년 9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혼인 동향 분석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여성은 20대 초반, 남성은 20대 후반 이후에 미혼율이 급격하게 하락했지만, 최근에는 이런 패턴이 상당히 완화됐다고 한다. 특정 연령까지는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규범이 점점 약해져가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늦어도 30대 중반 이전에는 결혼하려는 경향이 지금은 남아 있지만, 앞으로는 약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학력, 직업, 소득 등 다 갖췄지만 결혼을 하지 않거나 못한 알파걸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출세, 자아실현과 결혼은 상극이기만 한 것일까.
“내가 많은 걸 이루면 이룰수록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에요. 여자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인지 나이 마흔 이하, 키 175cm 이상, 전문직이나 공기업 근무 등 여러 조건을 거는데 조금만 눈높이를 낮추길 바라요.”(홍 부대표)
“나이 마흔이 되도록 결혼 안 한 남자는 두 종류예요. 그저 착하기만 해서 매력이 없거나, 예쁜 여자만 찾는 바람둥이거나. 물론 전자가 좋은 남편감이죠. 그런데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잖아요. 그게 참 안타까워요.”(최 원장)
“요즘엔 다들 경제적으로 비슷한 수준끼리 결혼하려고 해요. 10억 원을 가졌으면 상대는 최소 5억 원은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아무리 조건을 따져봤자, 세상살이나 결혼이나 좋은 게 반이면 나쁜 게 반인 법이더라고요.”(이 이사)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