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 박스를 나오며
―최승철(1970∼)
방금 나간 여자의 체온이 수화기에 남아 있다. 지문 위에 내 지문이 더듬는 점자들, 비벼 끈 담배꽁초에 립스틱이 묻어 있다. 간헐적으로 수화기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로운 사람은 쉽게 절박해진다. 모서리에 매달려 있는 거미의 눈빛이 여자의 체온으로 차가워졌다.
살아는 있니?
‘방금 나간 여자’나 그 여자가 차마 끊지 못하고 내려놓은 수화기에서 여자 이름을 부르는 남자나 외로운 사람들이다. 공중전화 박스 안 ‘모서리에 매달려 있는 거미’나 ‘유리창에 짓눌려져 있’는 모기도 외롭다. 화자도 외롭다. ‘하나를 툭,’ 치니 ‘여러 개의 꽃대궁이 동시에 흔들’리는 소국(小菊)처럼, 모두가 외로운 외로움의 맥놀이.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현재 주거 부정에 신용불량일 듯한, 삶이 위태로워 보이는 모르는 여인과 기타 등등 사람이 공중전화 박스에 남긴 자취가 화자 가슴에 우수를 불러일으킨다. ‘그저 당신이라고 부르고 싶은 계절’이란다. 당신, 당신들, 어디서든 부디 살아 계시오! 숨 받아 태어난 존재들은 원초적으로 외로운데, 게다가 어떤 인생은 구차하고 치사하기도 하다.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운 일인가!
그 여인, 담배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렸을까. 새해부터 담뱃값이 대폭 오른다. 살림이 어려운데 담배를 정 못 끊겠으면 마당이나 베란다에 담배를 키우는 것도 한 방편이리라. 마음 맞는 사람끼리 텃밭을 얻어 담배 주말농장을 할 수도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