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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귀화는 지는 것” 재일교포 3세 유도 대표 안창림

입력 | 2014-12-29 03:00:00

실력 있어도 국제대회 못 나가고… 日 대학 정상 오른 뒤 한국행 결심
73kg급 제주 그랑프리 제패 이어, 더 권위 있는 그랜드슬램 동메달
안창림 “어리지만 리우 올림픽 우승 목표”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사진기자의 말에 “그래요?”라며 쑥스러워하면서도 더 활짝 웃어 보인 유도 샛별 안창림. 지하철을 타고 태릉선수촌과 용인대를 오가며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안창림은 “몸은 힘들지만 한국에서의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사진기자의 말에 “그래요?”라며 쑥스러워하면서도 더 활짝 웃어 보인 유도 샛별 안창림. 지하철을 타고 태릉선수촌과 용인대를 오가며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안창림은 “몸은 힘들지만 한국에서의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사진기자의 말에 “그래요?”라며 쑥스러워하면서도 더 활짝 웃어 보인 유도 샛별 안창림. 지하철을 타고 태릉선수촌과 용인대를 오가며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안창림은 “몸은 힘들지만 한국에서의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사진기자의 말에 “그래요?”라며 쑥스러워하면서도 더 활짝 웃어 보인 유도 샛별 안창림. 지하철을 타고 태릉선수촌과 용인대를 오가며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안창림은 “몸은 힘들지만 한국에서의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귀화해라. 그래야 더 큰 무대에 나갈 수 있을 것 아니냐.”

대학에 입학한 아들에게 아버지(안태범 씨·50)는 애써 담담하게 얘기했다. 유도를 곧잘 하면서도 국제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한 말이었다. 아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을 꺼내기까지 아버지가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고 차별받고, 한국에서는 ‘반쪽발이’라고 무시당하는 존재가 재일교포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하고 평생을 한국 국적으로 살아온 부모님이었다.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재일교포 사회에서 비난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그럴 수 없었다. ‘귀화하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보다 못한 선수들이 일본 대표로 뛰는 걸 지켜보기만 했죠. 화가 나기보다는 어이가 없었어요. 그럴 땐 귀화 생각도 해 봤죠. 하지만 제 꿈을 위해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귀화 얘기를 꺼내셨을 때 마음을 굳혔습니다. 한국에 가기로.”

재일교포 3세인 유도 선수 안창림(20·용인대)은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로 유학을 왔던 할아버지가 정착한 곳이 교토였다.

“재일교포라 차별받았느냐고요? 당연히 그랬죠. 비웃고 놀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부모님이나 저나 재일교포가 되고 싶어 된 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런 시선을 의식하면 제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신경을 안 썼습니다. 놀리는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죠. 제가 성격이 좀 활발하거든요. 하하.”

지난해 전일본학생유도선수권대회 남자 73kg급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와 상패를 들고 있는 안창림. 안창림 제공

2년 전 일본의 유도 명문 쓰쿠바대에 입학한 안창림의 애초 계획은 대학 졸업 후 한국 대표 선발전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일본 학생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인 전일본학생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게 일정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10월에 열린 개인전 73kg급에서 우승했고 11월에 열린 단체전에서는 66kg급으로 뛰어 금메달을 땄어요. 학교에 뭔가 기여하고 싶어 감량을 좀 세게 했죠. 단체전 우승 뒤 ‘이제 일본에서의 목표는 다 이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일본학생선수권대회에서 2관왕에 오른 뒤 그는 한국에 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쓰쿠바대 감독은 물론이고 일본 대표팀 감독까지 나서서 일본 대표를 하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안창림은 태극마크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중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유도 유학을 가있던 안정환(30·여수시청)이 안창림과 용인대의 연결 고리가 됐다. 안정환의 삼촌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안병근 용인대 교수(52)다.

“잘 알고 지내던 (안)정환이 형에게 ‘용인대에 편입하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안 교수님을 소개시켜 줬죠. 그 뒤는 교수님이 다 처리해 주셨어요. 대표로 선발된 뒤에는 장학금도 받게 해 줬습니다. 안 교수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죠.”

올해 2월 혼자서 한국에 온 안창림은 용인대 3학년에 편입했다. 3월에 처음 나간 대표 선발전에서 3위를 하며 이름을 알렸고, 6월 최종 선발전에서는 1위를 하며 국내 유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8월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유도 세계선수권대회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유도를 해 온 안창림이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였다. 안창림은 이 대회 2라운드에서 당시 세계랭킹 2위이던 사기 무키(이스라엘)에게 졌다. 패배는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안창림은 10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우승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딴 금메달이었다.

지난달 제주에서 열린 그랑프리 국제유도대회. 73kg급에 출전한 안창림은 결승에 안착했다. 상대는 첫 국제대회에서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무키였다. 3개월 전과 비교해 무키의 랭킹은 3계단 떨어진 5위였고 안창림은 간신히 200위 안에 포함된 선수였다. 랭킹은 숫자일 뿐. 안창림은 화끈한 빗당겨치기로 한판승을 거뒀다.

“국가대표가 된 뒤로 제 실력이 나날이 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일본에서도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배웠지만 한국 대표팀에서처럼 집중 훈련을 하지는 못했거든요. 조인철 감독님, 송대남 코치님, 최민호 코치님… 이렇게 대단한 분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가르쳐 주시니 좋아질 수밖에 없죠. 기술은 물론이고 체력도, 정신력도 나아졌어요.”

안창림은 이달 초 열린 도쿄 그랜드슬램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성인 국제대회 2연속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그랜드슬램은 그랑프리대회보다 한 단계 높은 대회라 세계 상위 랭커들이 훨씬 더 많이 출전한다. 81kg급에 출전한 한국 유도의 간판스타 김재범과 왕기춘도 메달을 따지 못했다.

“2월 한국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정말 많이 달라졌죠. (왕)기춘이 형이나 (김)재범이 형 등 TV에서나 봤던 대단한 선수들과 같이 대회에 나가고 있으니까요. 기춘이 형은 지금 제 룸메이트이기도 해요. 후배라고 심부름 시키는 것도 없고 정말 잘해 줘요. 좋은 말도 많이 해 주시죠.”

왕기춘이 해 준 조언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을 묻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 기회는 없다’는 생각으로 지금에 모든 것을 걸라는 거예요. 제가 아직 어리다 보니 많은 분들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말씀하시는데 기춘이 형 얘기는 그게 아니라는 거죠. 형도 2008년 처음 나간 올림픽(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못 딴 걸 너무 아쉬워해요. 그래서 확실한 목표를 정했습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

한국 유도에서 남자 73kg급은 강자를 많이 배출한 ‘황금 체급’으로 통한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를 비롯해 김재범과 왕기춘도 이 체급 출신이다.

“짧은 인생이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잘한 선택이 한국에 온 겁니다. 마이애미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부모님이 정말 기뻐하셨어요. 인천 아시아경기 때는 주전이 아니라 관중석에서 선배님들을 응원했는데 너무 부러웠죠. 그래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꼭 나가고 싶어요. 금메달을 따면 좋아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면서요.”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