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식도락]⑨서울미술관 ‘오, 홀리 나잇!’전과 립스테이크의 미국산 쇠고기 요리
운보 김기창이 그린 ‘예수의 생애’ 연작 수묵채색 성화 중 ‘최후의 만찬’(위쪽)과 서울미술관 건너편 레스토랑 ‘립 스테이크’의 립아이 스테이크.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비단 위에 가는 붓으로 그린 수묵채색화다. 비단은 닿은 붓이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번진 자국으로 흔적을 뚜렷이 드러낸다. 운보의 붓놀림에는 짤막한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 수태고지, 오병이어 기적, 최후의 만찬을 거쳐 십자가형(刑)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재해석하고 상상해 낸 ‘한복 입은 예수’의 생애를 머릿속에서 꺼내 보여 주듯 한달음에 죽죽 이어 그려 냈다.
운보는 여덟 살 때 장티푸스를 앓아 고열로 인해 청각을 잃었다. 장성한 뒤 어느 날 꿈속에서 어두운 방에 예수의 시신이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들쳐 업고 나오려 하는데 도무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주저앉아 통곡하다 깨어났다. 이 경험을 계기로 그리기 시작한 것이 ‘예수의 생애’ 연작이다.
미술관 앞길 건너 지난해 초 개업한 ‘립 스테이크’(02-379-2581)는 국내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의 전형을 살짝 벗어난 파격을 선보였다. 코스 가격이 만만찮지만 최고 등급 한우는 없다. 모든 재료는 미국산 쇠고기. 김경진 셰프(41)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쇠고기 스테이크를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선택”이라고 했다.
립아이는 7주, 갈빗살과 부챗살은 6주 이상(운송 기간 포함) 섭씨 2.5도 보관고에서 건조 숙성(드라이에이징)시킨다. 고수 씨앗(코리앤더)과 통후추를 분쇄해 뿌린 뒤 숯불에 5분 정도 조리한다. 접시에 담기 직전 소금을 뿌려 남은 물기를 잡는다. 파삭. 씹는 맛은 확실하다.
저렴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전문점에 손님이 들까? 지난주 이웃 건물로 확장 이전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김 셰프가 타깃으로 삼은 고객은 “미국을 여행해 본 사람이 아닌 미국에서 일정 기간 거주하다 온 사람”이다. 스테이크를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을 묻자 그는 “집에서는 쉽지 않다”고 답했다. “올리브유 연기가 위험스럽다 싶을 정도로 펄펄 솟을 때까지 팬을 달구고 고기를 얹어 보라. ‘적당한 선’을 넘어야 맛이 나온다. 그 파격에 세심함을 더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