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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자인 조카, 전세대출 받았다고 자격 박탈한다는데…

입력 | 2014-12-30 03:00:00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와 함께 하는 진짜 복지이야기]




연탄을 든 한 여인이 골목길을 오르고 있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지제도를 촘촘하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DB

배진수 변호사 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

얼마 전 센터로 상담을 청해 온 김은영(가명) 씨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오빠의 자녀를 지난 15년간 양육해 왔다. 김 씨가 모시고 있는 노모는 지체장애 2급이다. 김 씨가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어머니를 돌보고 조카를 키워내느라 그간 겪었을 어려움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되는 바다. 그나마 조카가 기초생활수급자로 별도 보호되고 있어 매월 들어오는 수급비로 양육비를 충당하고 있다. 김 씨의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 가구가 아니지만 조카는 별도가구 인정 특례에 따라 개별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있다.




○ 조카가 임차인으로 계약… 재산으로 인정

김 씨는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보던 중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의 ‘가정위탁아동 전세자금대출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 18세 미만의 아동이 국민기초생활법상 부양의무자가 아닌 친인척과 동거하면 위탁가정에 전세자금을 대출해 주는 제도이다. 위탁아동이 만 20세가 될 때까지 무상으로 전세자금을 지원받고 만 20세 이후에는 연 2%의 이자를 부담하면 된다. 김 씨는 기쁜 마음에 대출 최고액인 7500만 원을 대출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야 하는 어머니 그리고 조카와 함께 편히 지낼 아파트에 이사했다는 기쁨도 잠시였다. 김 씨는 구청의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조카 명의로 재산이 발생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LH공사에서는 전세자금 대출 조건으로 임대차 계약 때 조카가 임차인으로 계약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김 씨는 미성년자인 조카의 대리인으로 계약서를 작성했었는데 이게 화근이 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는 재산이 있으면 이를 소득으로 환산해 소득이 발생한 것으로 본다. 이 소득이 1인 가구 기준으로 월 60만3403원(2014년 기준)을 넘으면 기초생활수급 자격이 박탈된다.

재산을 소득으로 계산하는 방법은 복잡하다. 대략 서울 지역의 주거용 재산이 1억∼1억1000만 원 정도면 자격을 박탈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 씨가 전세 계약을 한 아파트의 보증금은 1억9000만 원이었다. 기초생활수급 자격 기준을 넘어선 것이다.

김 씨는 LH공사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당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자 비용을 줄이려고 대출을 받은 것이었다. 조카의 기초생활수급 자격이 박탈되는 것을 알았다면 친척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다른 방법으로 돈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했다. 조카가 기초생활수급자로 혜택을 받는 것이 이자비용을 감면받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들인데 하나를 받으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임대차 계약자 명의 변경 外 방법 없어

이런 사례가 아주 흔하지는 않다. LH공사 역시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며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규정상 전세 계약은 대출받은 위탁아동의 명의로 해야 하므로 임대차 계약의 명의인을 바꾸면 대출을 상환해야 한다고 한다. 구청에서는 전세 계약서상 임차인이 위탁아동이면 대출금을 제외한 나머지 보증금 전부가 아동의 재산으로 잡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최후의 방법으로 지방생활보장위원회에 심의를 올려서 보증금이 소득 환산에서 제외되는 재산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도 요청해 보았다. 각 구청에는 개별가구의 생활실태를 보아 수급자로 선정할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지방생활보장위라는 기구가 있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은 심의에 올릴 사안이 아니므로 임대차 계약자 명의를 변경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저소득층 지원제도와 기초생활보장제도 사이에서 김 씨는 어떻게든 돈을 빌려 대출을 상환하고 계약자 명의를 전환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다. 만약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마음고생, 몸 고생을 안 해도 될 일이었다. 이런 대출은 사전에 충분히 고지할 필요가 있다. 또 이런 때 김 씨와 조카가 공동 명의로 할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저소득층을 위한 각종 지원제도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들지 않도록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의 관계 속에서 좀 더 정교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

배진수 변호사 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