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논설위원
그는 2012년 총선 때 서울 관악을에서 후보단일화 여론 조작에 연루돼 물러난 이정희 전 대표의 자리를 이어받아 의원이 됐다. 운이 좋았지만 그의 격의 없음과 부지런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는 의원이 된 후에도 밤늦게 귀가할 때는 버스 종점 주변에서 삼삼오오 어울리는 주민들의 술자리에 끼어들어 한잔씩 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그는 정무위에 배치된 걸 못마땅해했다. 대학 졸업 이후 해온 게 노동운동밖에 없기 때문에 환경노동위에서 활동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정무위 소관인 금융을 잘 알 턱이 없다. 한번은 그가 ‘자본시장연구원’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청중석 맨 뒷자리에 앉아 경청하는 사진이 신문에 나왔다. 자본시장연구원장이 내 고교 동기라 어느 술자리에서 물어보니 행사 전에 그가 온다는 얘기는 없었고, 행사 때 직원이 보고 알려와 가서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공부를 해서라도 의원 일 제대로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는 김선동 전 의원처럼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리지도 않았고, 이 전 대표처럼 여론 조작에 연루된 적도 없고, 무엇보다 이석기 김미희 김재연 전 의원의 RO(혁명조직) 모임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그 모임은 경기도당의 모임이어서 서울시당 소속인 그는 거기에 갈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철거민 동네인 성남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기도당은 예전부터 수뇌부를 정점으로 규율이 강한 조직이다. 통진당은 지역 운동권의 연합체인 전국연합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같은 당이라도 경기 서울 울산 광주·전남 등 시도당별로 조직과 활동 방식은 큰 차이가 난다고 한다.
내가 그의 면전에서 통진당 해산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할 때도 그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말도 하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비판했지만 이런 말을 덧붙였다. “통진당이 해산 이전에 이미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국민의 마음을 거론한 데서 우리가 그동안 이념이 다름에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공통의 기반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과거 주사파 대부 김영환 씨가 밀입북해 받은 돈 중 500만 원을 1995년 그에게 줬다는 증언을 완강히 부인한다. 그는 이적단체에 연루돼 처벌받은 적은 없지만 검찰에 따르면 일심회의 대북보고서에 ‘주체사상의 중심이 확고히 선 동지’로 표현돼 있다. 그의 비밀을 내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다만 약 20년 전 그 일은 김 씨의 말 이외에는 지금 와서 증명할 방법이 없다. 이런 식의 주장은 매카시즘만 조장할 뿐이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그 결정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 통진당은 역사의 패배자가 됐다. 경기도당의 RO 모임은 일반 국민만이 아니라 다른 시도당의 통진당원들에게도 충격적이었을 수 있다. 이제 해산을 당한 쪽에도 스스로를 돌아봐서 변화를 모색할 여지를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