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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窓]탈북이 남긴 화상자국 성형… 마음의 흉터까지 지웠어요

입력 | 2014-12-31 03:00:00

용산署-성형외과의사회 MOU
30대 탈북女 첫 수혜… 새삶 찾아




정수리에 밤톨 크기의 화상을 입은 뒤부터 더이상 머리카락이 나지 않았다. 모발 사이로 허옇게 드러난 두피를 본 사람들은 “머리가 왜 그렇냐”고 물었다. 탈북여성 이수미(가명·31) 씨는 매번 “탈모가 있다”고 둘러댔다. 잊고 싶은 과거는 입밖에 꺼내기도 싫었다.

악몽 같던 화상의 기억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탈북을 선택한 스무 살 때였다. 동네 지인은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며 함께 탈북한 뒤 중국의 인신매매범에게 이 씨를 팔아넘겼다. 졸지에 시골에 사는 한족 남성(33)의 아내가 된 계기였다.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괴로웠다. 중국 공안이 탈북자를 잡으러 찾아올까 봐 숨어 지내면서 답답하기도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집을 몇 차례 뛰쳐나갔다. 가출을 반복하다 다시 붙잡혔을 때, 남편은 집에 데려와 담배를 꺼냈다. 그러고는 이 씨의 가슴과 배, 머리를 지지기 시작했다. 피부가 타들어갔다. ‘이렇게 고통스러울 바에야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병원에 보내주기는커녕 연고도 주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빠진 자리는 허옇게 비었고, 가슴과 배엔 검붉은 흉터가 남았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해 2009년 한국에 왔다. 새 삶을 시작했지만 몸의 상처도, 마음의 상처도 그대로였다. 화상 자국을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났다. 늘 ‘언젠가 날 이렇게 만든 인신매매범들, 중국인 남편을 찾아가서 꼭 죽이고 복수해야지’라고 다짐하며 이를 갈았다. 분노와 원망이 목까지 차오를 때마다 우울증 약을 먹으며 버텨야 했다.

인간에 대한 증오를 누그러뜨리기 시작한 건 2012년 김경숙 당시 서울 서대문경찰서 보안계장(51·여)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김 계장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 “밤이든 낮이든 상관없으니 언제든 편하게 연락하라”며 다가왔다. 한국 사회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김 계장이 올해 초 서울 용산경찰서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인연은 계속됐다. 올해 7월 용산서는 대한성형외과의사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탈북민들에게 2000만 원 상당의 무료진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화상 문신 기형 등 외모로 인해 생활에 불편을 겪고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들이 대상이다. 진료는 의사회 회원들의 재능기부로 이뤄진다.

이 씨는 김 계장의 소개로 재능기부의 첫 수혜자가 됐다. 지난달 27일에 가슴과 배의 화상자국 제거 시술을, 이달 17일에 머리 모낭이식 시술을 받았다. 지금 다니는 대학에서 더 당당하게 생활할 자신감이 커졌다. 그는 “한국에 와서 사랑을 많이 받다 보니 그동안 쌓였던 아픔을 지우게 됐다”며 “미워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아픔을 딛고 통일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계장은 이 씨에게 말했다.

“네겐 특별한 사명이 있어. 통일 이후에 북한에 있는 사람들에게 네가 사랑을 줘야 돼.”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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