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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곡선과 직선의 미학 잘 드러나있어요

입력 | 2014-12-31 03:00:00

부석사 무량수전 vs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국보 18호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無量壽殿·고려 1376년)과 국보 49호 충남 예산 수덕사 대웅전(修德寺 大雄殿·고려 1308년). 이 두 건축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었으면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로 꼽힙니다. 고려 때 지어진 두 건축물은 전체적으로 간결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잘 들여다보면 비슷한 듯하지만 차이가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이 정교하면서 세련된 곡선의 미학을 보여 준다면 수덕사 대웅전은 장중하면서도 힘찬 직선의 미학을 보여 줍니다. 이런 비유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무량수전이 여성적이라면 대웅전은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 무량수전, 처마 곡선의 황홀함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찬찬히 걸어 올라가는 길, 기대했던 무량수전 모습은 조금씩만 살짝살짝 드러내고, 안양루(安養樓) 밑을 지나 계단을 올라섰을 때 눈앞에서 출렁거리는 처마선, 처마 곡선의 황홀함에 문득 뒤돌아보면 저 멀리 펼쳐지는 소백산의 장대한 능선….

부석사 무량수전은 그렇게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무량수전 앞에 서면 사뿐히 고개를 치켜든 날렵한 지붕 곡선이 우선 눈에 들어오지요. 한참을 들여다보노라면 처마가 춤을 추는 듯 출렁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착시(錯視)지만 그 출렁거림은 엄연한 사실이지요. 그리고 그 덕분에 곡선의 효과는 더욱 극대화됩니다.

이 같은 곡선의 미학은 무량수전 건물에 담겨 있는 다양하고 절묘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안허리곡(曲), 귀솟음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안허리곡은 건물 가운데보다 귀퉁이의 처마 끝을 좀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것을 말해요. 귀솟음은 건물 귀퉁이 쪽을 가운데보다 높게 처리한 것을 말하지요. 안허리곡과 귀솟음은 건물의 귀퉁이 부분을 좀 더 높게 튀어나오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려의 건축 장인들은 무량수전에 왜 이런 장치를 넣었을까요? 건축물은 정면에서 보면 귀퉁이 쪽 처마와 기둥이 실제 높이보다 처져 보입니다. 보는 사람의 눈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착시입니다. 안허리곡과 귀솟음은 이 같은 착시를 막기 위한 고안이었어요. 모퉁이 쪽이 처져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그 부분을 높게 튀어나오도록 한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건축적 고안이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서로 어울리면서 빼어난 곡선을 연출한다는 점입니다. 건물 앞면이 마치 볼록거울처럼 휘어져 보이는 것도 안허리곡, 귀솟음 덕분입니다. 그렇게 휘어진 건물의 곡선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입니다. 무량수전 앞에 섰을 때, 지붕과 기둥이 출렁거리듯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지요. 직선의 목재가 만들어 낸 곡선의 아름다움입니다.

○ 수덕사 대웅전, 간결 단순함의 극치

수덕사 대웅전 앞에 서면, 단순한 기와집 한 채가 우뚝 서 있는 형국입니다. 간결함과 단순함의 미학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럼, 무엇이 이 건물을 이토록 단순 명쾌하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다름 아닌 맞배지붕이 아닐까 싶습니다. 맞배지붕은 지붕이 건축물의 좌우에는 없고 앞뒷면으로만 맞붙어 있는 형태의 지붕을 말합니다. 옆에서 보면 지붕의 선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하고 있어요. 맞배지붕은 한국 기와 건물의 지붕 가운데 가장 단순한 형식입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팔작지붕입니다.

맞배지붕의 대웅전은 묵직하면서 소박합니다. 그 소박함은 간결함과 장중함으로 이어집니다. 중간을 약간 배불리 나오게 만든 배흘림기둥은 이 묵직한 지붕을 튼실하게 받쳐 줍니다. 참 믿음직스럽지요.

맞배지붕 대웅전의 매력과 미학은 옆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사람 인 자 모양의 지붕 선에는 어떠한 장식이나 꾸밈도 없습니다. 그저 최소한의 지붕 선만 있을 뿐이지요.

앞면 못지않게 옆면에서 보아도 대웅전은 역시 육중하고 견고합니다. 나무 부재들은 가로 세로로 놓이면서 대웅전 옆쪽 벽면의 공간을 멋지게 분할합니다. 단순한 듯하지만 절묘한 기하학적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부석사 무량수전의 팔작지붕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특징이자 매력이지요.

이에 힘입어 대웅전 옆면 전체에 조용하지만 경쾌한 리듬감이 넘쳐 납니다. 그 위로 기와지붕의 완만하고 부드러운 곡선이 전체를 감싸 줍니다. 기하학적 구성과 경쾌한 리듬감, 그리고 견실한 힘. 선(禪)의 사찰 수덕사에 걸맞게 침묵하면서도 심오한 깊이를 전해 주는 대웅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 수덕사 대웅전의 미학이자 맞배지붕의 미학입니다.

부석사 무랑수전의 유려하고 경쾌한 처마 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수덕사 대웅전의 간결하고 담백한 처마 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이 두 건축물은 한국 전통 건축의 백미(白眉)임에 틀림없습니다. 2015년 새해를 맞아 눈 내린 부석사 무량수전과 수덕사 대웅전을 찾는다면 좋은 추억이 될 겁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