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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공정선거 시스템’ 도입… 민주주의 꽃피운다

입력 | 2015-01-01 03:00:00

통일코리아 프로젝트 3년차, 준비해야 하나 된다
[사회주의 굴레 벗은 나라들]<上>민주화 새내기 키르기스스탄




투이구날리 압드라이모프 키르기스스탄 중앙선거관리위원장(가운데 왼쪽)이 지난해 9월 키르기스의 수도 비슈케크에서 이동구 코이카 아시아2부장과 한국의 선거 시스템 지원에 대한 협약식을 갖고 악수하고 있다. 코이카 제공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가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체제 전환을 이끌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은 옛 소련에서 독립해 민주주의 체제로 변신한 키르기스스탄에 한국의 선거 시스템을, 개혁개방을 선택한 미얀마에 근대화(새마을운동)를 옮겨 심고 있다. 권위주의에서 점진적 개혁을 택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산업 역군 배출을 돕는 직업훈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분야의 다양한 ODA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며 북한에 ‘올바른 선택을 하면 체제 변화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 준다는 의미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미얀마 등을 거론하며 체제 전환의 성공 사례로 제시했다. 동아일보는 3회에 걸쳐 코이카의 ODA가 변모시키는 체제 전환 현장을 소개한다.



키르기스스탄. 낯선 이름의 이 나라에 한국의 민주주의와 IT 기술이 동시 진출을 꾀하고 있다. 코이카는 올해 10월 키르기스 총선을 앞두고 자동화된 한국형 선거 시스템을 지원한다. 한국이 제3국에 선거 시스템을 지원하는 것은 처음이다. 투이구날리 압드라이모프 키르기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한국의 선거 시스템 지원으로 5∼10%에 이르던 부정 투표가 없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키르기스, 중앙아시아 민주화 1번지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알라투 광장에 있는 시민혁명 기념탑. 시민들이 독재와 부정부패를 상징하는 검은 돌을 무너뜨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비슈케크=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키르기스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과 더불어 독립국가연합(CIS) 국가 중 하나. 중앙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시민 혁명으로 정권 교체를 이뤄 냈다. 2005년 3월 ‘튤립혁명’으로 아카예프 정권이, 2010년 4월 시민 봉기로 바키예프 정권이 각각 물러났다. CIS 국가 최초로 1998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개방적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구축했다.

신생국은 그 나름의 성장통을 겪는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불안정하고 민족 갈등이 반복된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키르기스는 민족 구성이 다양해 민족 갈등의 긴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밝힌 것처럼 부정선거는 불안정을 악화시키는 촉매였다. 그 만큼 공정한 선거가 중요하다. 김영목 코이카 이사장은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키르기스 대통령이 ‘다가오는 총선을 꼭 성공적으로 치르고 싶다’며 선거 시스템의 지원을 절박하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아탐바예프 대통령은 2013년 11월 서울에서 박 대통령에게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모델 국가”라며 선거·투표 관리 시스템 지원을 요청했다.

○ “한국은 민주화 모델 국가”

선거 지원 사업이 처음부터 호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차라리 병원을 지어 주는 게 낫다’고 할 만큼 부정적이었다.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는 완전 선거 자동화를 했다가 기계 조작을 통한 선거 부정이 벌어질 소지가 더 크다고 우려했다. 한국에서도 선거 개표·집계는 수작업(수개표)과 전산처리(투표지 분류)를 혼합한 부분 자동화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키르기스 정부가 나섰다. 지난해 4월 보궐선거에 한국이 제작한 광학 판독 개표 장비를 시범 운영한 결과 속도와 정확성이 입증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한국의 결단을 지켜본 일본, 스위스가 동참 의사를 발표하자 UNDP도 태도를 바꿨다. 에르킨베크 카시베코프 UNDP 키르기스 사무부소장은 “2010년 키르기스 시민 혁명이 일어난 것도 직전 선거 결과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며 한국의 지원을 통한 공정한 선거를 기대했다. 타지키스탄(내란) 투르크메니스탄(전직 대통령 돌연사) 아제르바이잔(대통령 부자 세습) 등 주변국에 ‘공정 선거’의 희망을 파급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 “키르기스는 중앙아시아 진출 도약대 될 것”

키르기스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상하이협력기구(SCO) 유라시아경제공동체(EurAsEC) 중앙아협력기구(CACO) 등 다자안보·경제협력체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카자흐스탄, 서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 남쪽으로는 타지키스탄, 동쪽으로는 중국에 둘러싸인 전략적 위치도 중요하다. 옛 사회주의권 국가의 개혁개방 경험을 북한에 전파한다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추진 중인 한국으로서는 키르기스 ODA 실험이 그만큼 중요하다.

선거와 함께 주목되는 것은 올해부터 3년간 코이카가 추진하는 키르기스 토지정보 시스템 구축 사업. 국가등록청(등기소에 해당)과 지적국 자료 체계를 일원화해 토지 관리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키르기스 토지 관련 사업에 한국산 장비가 계속 납품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창규 주키르기스 대사는 “키르기스 ODA 지원은 한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에 도약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압드라이모프 중앙선관위원장
“알타이문화 ‘뿌리’ 같아… 美-日보다 가까운 한국에 지원 요청” ▼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은 뿌리가 같다. 알타이문화라는 같은 뿌리 덕분에 한국에 친근감과 동질감을 갖고 있다.”

투이구날리 압드라이모프 키르기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한국의 선거 시스템 지원에 대해 각별히 고마움을 표시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의 선거시스템이 키르기스에 지원되기까지 산파 역할을 했다. 2013년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창립총회에서 한국의 선거자동화시스템을 본 뒤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대통령에게 이를 도입하자고 건의한 사람이 압드라이모프 위원장이었기 때문. 자신이 2008∼2011년 주한 키르기스 대사로 근무해 각별한 인연을 맺은 덕분이기도 했다.

그는 “미국 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 일본 기관인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등 여러 단체가 이미 키르기스에 진출해 있지만 최근 코이카가 역동적으로 활약해 왔고 정서적으로도 가까워 선거 시스템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키르기스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번 투표하거나 한 번에 여러 장의 투표지를 투표함에 집어넣는 사례가 적발돼 왔다”며 자동화 시스템의 절박성을 강조했다.

한국이 시스템 지원을 약속한 곳은 비슈케크와 오시 등 도시 2곳이다. 전국 단위로 선거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유엔개발계획(UNDP)이나 스위스, 일본 정부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그는 “다른 나라의 지원이 원활하지 않으면 키르기스 자체 예산으로라도 완전 선거 자동화를 이뤄 낼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1000만 달러(약 109억8800만 원)의 예산도 잠정 확보해 둔 상태라고 했다. 지역별 순차 도입이 아니라 전국 동시 자동화를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얼마나 선거 제도가 달라질 수 있는지 국민에게 확실히 보여 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한국의 모든 분야를 따라 배우고 싶다는 그에게 ‘한국 사람들도 민주주의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데 롤 모델이냐’라고 넌지시 물어봤다. 그러자 “역사상 한번도 국민이 정부에 불만이 없는 시대는 없었다. 미국도 민주주의 국가지만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일수록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웃음)”는 답이 돌아왔다. 

■ 키르기스스탄은… 경관 뛰어난 ‘중앙亞의 스위스’… 한류 드라마-가전제품 큰 인기

키르기스스탄은 풍부한 광물 자원과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린다. 전 국토의 7%만이 경작 가능한 농지다. 나머지는 산악지대다. ‘톈산 산맥의 진주’로 불리는 동북부의 이시크쿨 호수는 남미 ‘티티카카 호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고산 호수다. 주변 둘레가 400km에 이른다. 겨울에도 얼지 않아 ‘뜨거운 물’이라는 의미의 이름이 붙었다. 옛 소련 시절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지였다. 도심을 벗어나면 유목민 전통을 원형대로 볼 수 있어 관광사업 잠재력이 높다. 252개의 강이 있는 키르기스는 연간 1630억 kWh의 높은 수력발전 능력을 갖고 있다. 국내 소비전력의 90%를 수력발전으로 충당한다. 물자원은 하류 지역 국가와의 잠재적인 분쟁 요인이기도 하다. 옛 소련 붕괴와 더불어 1990년 12월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키르기스공화국’으로 개칭했다. 1991년 2월 수도 ‘프룬제’도 ‘비슈케크’로 개명해 새롭게 태어났다. 1991년 8월 31일 독립을 선포했다. 한국과는 1992년 1월 수교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인기에 힘입어 이곳에서 ‘구준표와 결혼하는 법’이라는 영화가 제작됐을 정도라고 한다. 시내 곳곳에서 휴대전화 등 한국 전자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비슈케크=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