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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코레일 사장님, 시각장애 직접 체험해 보세요”

입력 | 2015-01-01 03:00:00

열차사고 장애인 부모등 10여명… 용산역서 사고 재현 집회
소극적 사후대처로 분노 더해… 공사측 “시설 개선… 과실은 없어”




시각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등 10여 명이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4번 플랫폼에서 장애인 추락사고 당시를 재현하려다 경찰에 가로막히자 항의하고 있다.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

“우리 석이가 어떻게 (철로에) 떨어졌는지 확인해 보자는 거잖아요!”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3시 서울 용산역 4번 플랫폼에서 시각장애 자녀를 둔 부모 4명이 다른 시각장애인 등 10여 명과 함께 경찰과 대치하며 이렇게 외쳤다. 부모들은 “우리 엄마들이 선로에 떨어져 볼 테니까 경찰은 비켜! 코레일 관계자가 시각장애 체험해 봐요!”라며 격분했다.

이곳은 시각장애 1급 최석 씨(27)가 지난해 9월 20일 걷다가 추락한 장소다. 시각장애인용 유도블록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최 씨는 출구를 찾지 못했다. 사고지점은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인 데다 안전요원도 없었다. 추락한 최 씨는 3분가량 철로에 방치되다 열차에 치이고 말았다. 뇌출혈 척추부상 등 전치 32주의 중상을 입었다.

지난해 12월 30일 국립중앙의료원 입원실에서 만난 최 씨는 사고의 충격이 너무 컸던 탓에 당시 상황을 정확히 떠올리지 못했다. 하반신 마비로 발가락 하나도 본인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온종일 누워서 지낸다. 식사와 소변은 주삿바늘에 연결된 줄에 의지했다. 사고 전만 해도 키 175cm에 몸무게 95kg이었지만, 지금은 몸무게가 80kg 남짓으로 줄었다.

최 씨의 어머니 김광순 씨(54)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 용산역을 운영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태도였다. 직원이 면담에 응하긴 했지만 과실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진 않았다. 김 씨는 “직원이 ‘떨어졌을 때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느냐’고 묻더라. 철로에 떨어져 공포에 질려 있는데 어떻게 소릴 지르겠나. 나 역시 아무 말도 못했을 것”이라며 슬퍼했다.

시각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29일 용산역에 모여 한마음으로 분노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연순자 한국시각장애인가족협회 이사는 “용산역장님, 코레일 사장님. 시각장애인 체험해 보시겠습니까? 그 길 똑같이 가보십시오. 눈이 안 보이니 다친 건 네 탓이라는 건 저희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2시간 넘도록 대치가 이어진 후에야 코레일 직원이 사고 현장에 와서 말했다.

“사고로 이어져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내년 상반기까지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점자(유도)블록에 대해서는 개선할 점이 있으면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날 발언에 대해 “과실을 인정한 건 아니고, 대화가 오랫동안 미흡했던 부분을 사과한 차원이다. 사고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수준”이라고 31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스크린도어를 국가 예산으로 설치하니 우선순위의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현재 설치 현황이 규정상 미비하진 않다. 자세한 개선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아들의 사고 현장을 보고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면서 가슴에서 방망이가 치더라”고 회상했다. 과실 인정이 아닌 ‘유감 표명’만 받은 셈이고 아직 시름도 깊다. 사고 후 3개월간 청구된 진료비는 약 3200만 원.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도 1160만 원을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가족의 월 소득이 200만 원도 안 되는 형편이라 주변에 손을 벌리고 카드를 긁었다. 코레일 측은 “치료비 지급에 대해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