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사고 장애인 부모등 10여명… 용산역서 사고 재현 집회 소극적 사후대처로 분노 더해… 공사측 “시설 개선… 과실은 없어”
시각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등 10여 명이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4번 플랫폼에서 장애인 추락사고 당시를 재현하려다 경찰에 가로막히자 항의하고 있다.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3시 서울 용산역 4번 플랫폼에서 시각장애 자녀를 둔 부모 4명이 다른 시각장애인 등 10여 명과 함께 경찰과 대치하며 이렇게 외쳤다. 부모들은 “우리 엄마들이 선로에 떨어져 볼 테니까 경찰은 비켜! 코레일 관계자가 시각장애 체험해 봐요!”라며 격분했다.
이곳은 시각장애 1급 최석 씨(27)가 지난해 9월 20일 걷다가 추락한 장소다. 시각장애인용 유도블록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최 씨는 출구를 찾지 못했다. 사고지점은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인 데다 안전요원도 없었다. 추락한 최 씨는 3분가량 철로에 방치되다 열차에 치이고 말았다. 뇌출혈 척추부상 등 전치 32주의 중상을 입었다.
최 씨의 어머니 김광순 씨(54)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 용산역을 운영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태도였다. 직원이 면담에 응하긴 했지만 과실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진 않았다. 김 씨는 “직원이 ‘떨어졌을 때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느냐’고 묻더라. 철로에 떨어져 공포에 질려 있는데 어떻게 소릴 지르겠나. 나 역시 아무 말도 못했을 것”이라며 슬퍼했다.
시각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29일 용산역에 모여 한마음으로 분노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연순자 한국시각장애인가족협회 이사는 “용산역장님, 코레일 사장님. 시각장애인 체험해 보시겠습니까? 그 길 똑같이 가보십시오. 눈이 안 보이니 다친 건 네 탓이라는 건 저희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2시간 넘도록 대치가 이어진 후에야 코레일 직원이 사고 현장에 와서 말했다.
“사고로 이어져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내년 상반기까지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점자(유도)블록에 대해서는 개선할 점이 있으면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김 씨는 아들의 사고 현장을 보고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면서 가슴에서 방망이가 치더라”고 회상했다. 과실 인정이 아닌 ‘유감 표명’만 받은 셈이고 아직 시름도 깊다. 사고 후 3개월간 청구된 진료비는 약 3200만 원.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도 1160만 원을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가족의 월 소득이 200만 원도 안 되는 형편이라 주변에 손을 벌리고 카드를 긁었다. 코레일 측은 “치료비 지급에 대해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