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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주변 극장 운영은 위법인가

입력 | 2015-01-01 03:00:00

[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헌법 제22조 제1항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은 연주 공연 상영 등 예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기타를 든 한 연주자가 서울 대학로에서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손상식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원

학교보건법은 유치원, 초중고교와 대학 등 모든 학교의 주변에서 무대 공연 및 영화 상영을 포함한 일체의 극장업을 할 수 없도록 했다. 물론 이를 위반하면 처벌을 받는다.

A 씨는 초등학교 주변에서 극장을 인수해 운영했다. 법률 조항을 위반하며 극장 영업을 하게 된 셈인데, 결국 재판을 받게 됐다. 담당 법원은 재판 중에 이 법률 조항이 위헌이라면서 위헌 제청 신청을 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법률 조항의 목적이 학교의 보건·위생 및 학습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극장 운영자의 직업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과잉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예로부터 미를 추구하거나 진리를 탐구하는 행위는 국가나 사회로부터 많은 박해와 탄압을 받았다. 당시의 지배 세력이 공유하던 정치·사회·문화·종교적 관념에서 벗어난 예술이나 학문 활동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지배 세력은 체제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 이를 금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예술 작품이나 서적이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사라졌고 그것을 창작하고 궁리한 예술가와 학자들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인류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반성으로 국가를 비롯한 지배 세력의 방해와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자유로운 지적·미적 활동을 추구하기 위해 헌법 제22조 제1항에서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의 감정, 경험, 인식 등을 일정한 매체를 통해 나타내는 자유로운 창조의 결과물이 모두 예술의 자유에 의해 보호된다. 예술가들은 매우 개성적이며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고, 기존의 미적 기준이나 가치를 넘어서려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예술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예술가의 관점으로 이를 정의하면 예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이비 예술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국가가 이를 독점하면 독일의 나치스 시대나 과거 소련에서와 같이 국가체제에 봉사하는 예술만이 보호되고 허용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법 이전의 현상이지만,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국가, 궁극적으로는 헌법재판소에 의한 개념 정의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는 예술가의 주관적인 관점을 모두 포괄하는 개방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는 예술을 정의하고 이해하는 데 획일적인 사고가 아니라 다원주의에 기초한 중립과 관용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 예술은 미적 표현 그 자체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상품 판매를 위한 수단으로서 예술 활동이 행해지는 상품광고가 예술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예술의 자유는 크게 예술 창작의 자유, 예술 표현의 자유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예술 활동을 통한 자유로운 인격의 발현을 보장하는 것에 있다. 예술 창작의 자유는 예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로서 창작에 필요한 소재나 형태, 창작에 이르는 구체적인 과정 등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공연·영상을 위한 수단으로 창작 활동을 하더라도 그 결과인 공연물·영상물은 당연히 예술 창작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 하지만 사진 촬영을 위해 입산이 금지된 산림보호구역에 들어가 수령 200년이 넘은 금강송을 무단으로 벌목하는 것까지 예술 창작의 자유로 보호될 수는 없다.

예술 표현의 자유는 예술 작품의 자유로운 연주·공연·상영 등을 보장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연극을 공연하거나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예술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공연이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극장의 설치와 운영은 예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 따라서 극장의 장소적 의미와 기능에 비추어 그 운영자 역시 예술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 헌법재판소도 예술품을 일반 대중에게 보급할 수 있는 자유가 예술 표현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함으로써 음반제작자나 예술출판자가 예술의 자유의 보호를 받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예술 표현의 자유도 무제한적인 기본권이 아니다. 예술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와 명예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없다. 국가안전 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면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 단, 이때라도 공익 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손상식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