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 가게 되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꼭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택시기사에게 설명을 해줘 가며 물어물어 찾아가 보았다.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각오는 하고 갔지만 막상 골목 안에 개인주택 규모의 초라한 건물이라니 코끝이 찡했다. 가파르고 비좁은 계단으로 연결된 낡은 건물의 각 방에 전시된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의 오래된 집기, 지도와 사진 등 유물들을 바라볼 때는 더 마음이 아팠다. 그 당시 점령군 일본은 우리의 서울 한복판에 조선총독부를 버젓이 세웠는데, 우리는 중국 땅으로 밀려나 이렇게 옹색하게 자리하고 있었으니 나라 잃은 회한이 얼마나 컸을까.
그런데 그나마 상하이에서도 버티지 못하고 항저우(杭州)로, 충칭(重慶)으로 밀려나는 행로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다. 그렇게 머나먼 길을 쫓겨 다니면서 참담했을 그분들의 심정을 헤아리며 독립투사들의 기념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얼굴들이지만 그래도 훗날 후손들이 찾아와 눈이라도 맞추며 인사를 한다면 그분들의 헌신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싸움인 줄 알면서도 몸을 던진 그분들. 무기나 군자금, 병력 모두 일본에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분들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승산이 없는 무모한 투쟁이라며 손놓고 있다가 광복을 맞이했다면 얼마나 더 부끄러웠을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럽다.
낡은 사진을 통해 고단해 보이지만 눈빛이 살아 있는 그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래를 열어가는 힘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임을 다시 확인했다. 희망의 불씨마저 없다면 누가 어둠을 헤치고 새벽을 열어줄 것인가.
상하이에서 해보는 나의 새해 다짐은 아무튼지 절대로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나라를 잃은 절망 속에서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었듯이 말이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