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뜨는 정치지도자들]<2>엘리자베스 워런 美상원의원
“일자리를 잃어 자동차도 없이 2마일(약 3.2km)을 걸어왔다. 나는 당신이 필요하다. 나를 위해 싸워 달라. 그 싸움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나를 위해 싸워줄 것인지 묻고 싶다.” 이어 워런의 입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예. 싸우겠습니다.”
이상은 워런 의원의 자서전 ‘싸울 기회(A Fighting Chance)’에 소개된 일화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그의 자서전에는 fight(또는 fighting·싸움)라는 단어가 224회나 등장한다. 워런이 (지금 힐러리 클린턴을 위협하는 민주당의) 대선주자로 뜨는 이유는 바로 이 단어 때문”이라고 했다.
워런은 미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대형은행 구제금융에 반대했다. “온갖 상술과 사술(詐術)로 선량한 소비자를 유혹하는 데 여념이 없고, 소비자 보호 의무는 방기해 온 대형은행을 왜 나랏돈으로 보호해줘야 하느냐”는 논리였다. 요즘도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 등을 상대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리먼브러더스보다 훨씬 더 커진 JP모건 등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 대형은행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느냐”고 따진다.
‘힐러리 전 장관이 너무 가운데(중도)로 가버렸다’고 여기는 민주당 내 강성 진보 세력은 이런 워런 의원에 열광한다. 대표적 지지 단체인 무브온(MoveOn.org)은 워런 의원을 대선 후보로 만들기 위한 정치자금 모금 운동을 최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무브온은 “워런 의원이 대선에 출마해야 ‘미 중산층의 위기’ ‘기울어진 운동장(구조적 불평등)’ ‘가진 자와 힘센 자들의 짜고 치는 게임판’ 문제가 국가적 의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미 언론들도 “워런이 내세운 경제적 불평등 이슈가 민주당을 뭉치게 하는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는 지난해 12월 진보단체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1위로 꼽혔다. ‘디모크러시 포 아메리카’가 회원 16만47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지지율 42%를 얻어 1위를 차지한 것. 힐러리는 23%를 얻는 데 그쳤다.
워런은 월가 개혁뿐 아니라 대학생 학자금 대출 문제에서부터 사회보장제도 확대, 남녀 간 임금 격차 해소, 여성 인권 향상 등 다양한 취약계층 보호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가 스스로를 ‘서민과 중산층의 대변자’라고 말하는 데 대해 미 국민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그의 성장환경에서 느껴지는 진정성 때문이다. 워런의 삶은 한마디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다. 막일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2세 때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바람에 식당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학창시절 토론을 워낙 잘해 대학 입학 장학금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지워싱턴대 2학년 때이던 19세에 고교 선배(짐 워런)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지만 자신에게 ‘전업주부의 삶’을 기대하는 남편과 갈등을 겪다가 10년 만에 이혼했다. 이후 변호사 시험을 보러 갈 때 갓난아이를 맡길 곳이 없자 시험 주관 기관에 “베이비시터를 시험장에 배치해 달라”는 탄원을 내 관철했다. 그의 강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80년 당시 코네티컷대 법학대학원 교수였던 현재 남편(브루스 맨)과 만나 결혼했다. 청혼도 워런 의원이 먼저 했다고 한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