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세상을 바꿉니다/잊지 못할 말 한마디]<끝>차동엽 신부의 오랜 지인
차동엽 신부 (인천 가톨릭대 교수)
재미삼아 양으로 비교해 봤지만, 어찌 질로도 똑같은 방식으로 서로를 견줄 수 있으랴. 질에는 많고 적음이 없으니 이 또한 늘 깨어서 유념해 둘 일이다. 단 한마디의 희소식으로도 듣는 이의 기쁨을 충만케 하는 것이 말의 힘이다.
2014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은근히 기다리던 기별이 있었다. 마음이 통했던지 마지막 달 초순이 지날 무렵 편지 한 통이 왔다. 친필로 빼곡하게 정서한 편지글 가운데에서 나는 내가 찾던 문구를 발견하였다.
발신인은 척추 중증 장애를 지니고 사는 나의 오랜 지인이다. 우여곡절 끝에 어린 시절 나무에서 떨어져 척추를 크게 다친 어여쁜 아내를 얻어 두 아들을 낳고, 치과 기공기술 및 귀금속 가공기술을 재산삼아 어엿하게 살아왔던 그. 그의 가정에 지난해 초 시련이 닥쳤다. 고3이 된 둘째 아들이 원인 모를 ‘틱’ 증세로 학교생활에 큰 위기를 맞이한 것이었다. 아들은 극심한 스트레스 반응 및 학습 부진에, 친구들로부터 ‘왕따’까지 당하는 3중고에 시달렸다. 성치 않은 몸으로 용기백배해서 살고 있던 부부에게 얼마나 큰 괴로움이었겠는가. 백방으로 방법을 써보다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내게 SOS로 도움을 청해왔다. 나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부모와 아이를 만났다. 충분한 대화를 통하여 몇 가지 단서를 나 나름으로 찾아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와 조언뿐이었다. 나는 정성껏 기도를 해 준 후, 얼른 마음에 떠오르는 몇 군데 전문의원을 소개해 줬다.
하지만, 오래도록 반가운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불현듯 가슴에 떠오를 때마다 기도를 바쳐 주었다. 그러던 중 저 편지가 날아든 것이었다. 내가 고대했던 글귀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내 입술은 저절로 무의식에서 솟아난 문장을 되뇌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렇고말고, 암 그렇고말고!”
이는 내가 좋아하는 성구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이사 42, 3)는 말씀이 여전히, 나아가 영원히 유효함에 대한 내 안도감의 표출이었다.
2015년 새해에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응원의 말들이 더 신명나게 소통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빈말은 없는 까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