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로봇, 속도·가스·중력 ‘3중고’ 과학적 해결에 찬사
온몸이 움츠러드는 추운 겨울. 곰처럼 겨울잠이나 실컷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주에도 곰처럼 태평하게 겨울잠을 자는 존재가 있다. 탐사로봇 필레가 그 주인공. 최근 유럽우주기구(ESA)는 탐사로봇 필레를 성공적으로 혜성에 착륙시켰다. 지구에서 5억1000km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5억km는 얼마나 먼 거리일까. 탐사선 로제타는 이 착륙을 위해 필레를 싣고 10년 8개월이나 비행했다. 이쯤 되면 ‘억’ 소리 나는 거리가 실감 날 것이다.
어쨌든 어마어마한 이 프로젝트를 일차적으로 성공시킨 유럽우주기구는 어깨가 으쓱해졌고, 전 세계는 들썩였다. 언론도, 과학자들도 온통 필레 얘기다. 엄청 어려운 임무였다는 정도는 알겠는데, 왜 유난히 이번 프로젝트가 이슈가 된 걸까. 사실 그동안 우주로 보낸 탐사로봇은 수도 없이 많은데 말이다.
10년 8개월 5억km 비행
첫째, 혜성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혜성 속도는 시속 6만6000km로, 총알보다 20~30배 이상 빠르다. 서울과 부산을 20초 만에 주파하는 엄청난 속도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혜성 위로 탐사로봇을 착륙시키기 위해선 탐사선이 혜성 속도에 맞춰 함께 비행하고, 착륙할 곳을 예상해 탐사로봇을 보내야 한다. 마치 빠르게 달리는 기차를 쫓아 달리다가 기차 좌석에 뛰어 앉는 원리와 같은 셈.
게다가 필레는 탐사선이 혜성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22.5km 떨어진 지점부터는 혼자 혜성으로 내려가야 했다. 필레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필레를 로제타에서 분리하는 시점과 위치 선정, 속도를 정하는 게 착륙 성패를 좌우한다. 과학자들은 필레가 떨어지는 시간 동안 이동하게 될 혜성의 위치를 예상해 필레의 적정 속도를 계산했다. 그 결과 초속 1m 속도로 내려가면 빠르게 움직이는 혜성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둘째, 혜성이 활화산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혜성은 태양에 가까워지면서 먼지와 가스를 분출한다. 혜성 안에 얼어 있던 가스와 먼지가 녹으면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활화산에서 가스와 용암이 나오는 것과 같다. 하지만 가스가 언제 분출할지 모를 뿐 아니라, 가스가 분출하면서 혜성도 함께 폭발할 수 있다. 또 만약 폭발로 혜성 일부가 떨어져 나가면 함께 있던 탐사로봇도 떨어져 나가게 된다. 10년 8개월간의 비행이 헛수고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뜻.
마지막으로 혜성의 중력이 너무 작다는 점이다. 특히 혜성에 착륙할 당시 중력은 지구의 1만 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혜성이 탐사로봇을 끌어당기는 힘이 매우 작다는 뜻이다. 다른 소행성이나 행성은 중력이 충분히 크기 때문에 탐사로봇이 근처에만 가도 중력에 의해 공전하게 되고, 착륙한 뒤 붙어 있기도 수월하다. 하지만 이 혜성은 중력이 매우 작아 탐사로봇이 착륙하기도 어렵고 계속 붙어 있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또 혜성으로 빨리 다가가다 부딪히면 작용·반작용 원리에 의해 우주로 다시 튕겨나갈 수도 있다. 그래서 필레는 튕겨 나가는 방향의 반대로 힘을 주는 ‘반동 추진 엔진’을 사용해 3번 만에 혜성에 착륙할 수 있었다.
이렇게 힘들게 착륙했건만, 필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배터리가 방전되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 지구로 혜성 성분을 분석한 1차 정보를 보냈지만, 필레는 아직 해야 할 임무가 너무 많다. 유럽우주기구에 따르면 필레는 현재 태양빛으로 하루 70분씩 충전하며 잠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충전의 성공 관건은 현재 필레가 잠들어 있는 위치와 혜성이 어떤 형태로 자전하느냐에 달렸다. 만약 혜성 자전축 방향이 지구처럼 세로로 돼 있고 현재 필레가 우리나라 위치에 있다면, 우리가 해를 볼 수 있는 낮 시간만큼 충전할 수 있다. 그런데 북극이나 남극과 같은 위치에 있다면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현격히 줄어든다. 자전축이 지구처럼 기울어져 있다면 여름에 해당하는 기간에 더 많이 충전되고 겨울에 해당하는 기간에는 적게 충전될 것이다. 만약 혜성이 아파트 지하층처럼 24시간 빛이 들지 않는 곳이라면, 또는 혜성의 분출 활동으로 분출된 먼지가 태양전지판을 덮어버리면 당연히 충전은 기대할 수 없다.
혜성에서 ‘생명의 기원’ 찾아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비행 도중 억지로 겨울잠을 재웠다. 바로 ‘세이프 홀드 모드(safe hold mode)’를 말하는 것이다. 동물이 겨울잠을 잘 때 심장만 뛰고 다른 장기들은 최소로 작동하는 것처럼, 탐사선도 통신장비나 배터리, 히터만 작동하는 세이프 홀드 모드에 들어가게 했다. 로제타는 세이프 홀드 모드로 2011년부터 약 31개월간 겨울잠을 잤다. 태양에서 멀어지면 태양전지판을 통한 충전도 어려우니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기계들이 오랫동안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보냈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는 10년 만에 지구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하야부사는 2003년 소행성에 도착한 이후 통신이 두절됐고, 당시 일본 과학자들은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뒤 극적으로 하야부사로부터 통신을 받았고, 채취한 샘플 표본도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태양빛을 적게 받는 곳에 착륙해 아주 조금씩 충전됐고, 완전히 충전되는 데 10년이나 걸렸던 것이다. 이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일본 사람들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을 안겨줬고, 이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달이나 화성, 소행성 등 탐사할 것이 많은데 왜 과학자들은 혜성에 집중할까. 혜성은 45억 년 전 태양계가 만들어지고 남은 물질들이 아주 먼 곳으로 날아가 그대로 얼어버린 물질이다. 그러다 태양계로 들어오면서 점점 녹아 가스와 먼지를 분출한다. 이때 나오는 가스와 먼지를 분석하면 소행성과 마찬가지로 태양계가 만들어졌을 당시의 여러 정보를 알 수 있다. 물과 가스는 얼마나 있었는지, 이런 가스들이 지금 상태로 존재하려면 그 당시에는 어떤 온도와 어떤 압력 상태였어야 하는지 등 말이다. 그래서 혜성 탐사는 생명체를 찾는 것이 아닌, 생명의 기원을 찾는 과정인 셈이다.
이윤선 동아사이언스 기자 petite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