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해롤드 앤 모드’
2대8 가르마와 유행 지난 반무테 안경. 이 고지식한 차림새는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미생’ 속 장백기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2014년 마지막 날 서울 청담동에서 만난 배우 강하늘(25)은 융통성 없어 보이던 장백기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풋풋하고 달달한, 시쳇말로 ‘밀크남’ 그 자체였다.
‘어쩜 그리 이미지가 다르냐’는 질문에 그는 “강하늘을 버리고 장백기 스타일을 만들어내기 위해 PD, 스타일리스트 등과 엄청나게 싸웠다”며 웃었다.
“미생에 캐스팅된 뒤 모든 스태프들이 ‘캐릭터 장백기’에 맞는 스타일이 아닌 ‘배우 강하늘’에게 어울리는 꽃미남 스타일을 찾더라고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드라마에선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가 돋보여야 하잖아요. 2대8 가르마와 반무테 안경도 100% 제 아이디어였어요. 똑똑한 신입사원이지만 고졸 출신 장그래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장백기와 잘 어울리지 않았나요?”
“당시 여러 기획사에서 영입 제안이 들어왔어요. 죄다 ‘돈 안 되는 연극, 뮤지컬은 해선 안 된다. 돈이 되는 방송 쪽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조건이었죠. 모두 거절했어요. 황정민 선배님을 만났을 때 ‘무조건 1년에 한 작품 이상 연극 또는 뮤지컬 무대에 서야 한다’고 말씀드렸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지금의 소속사와 인연이 된 거에요.” 소속사와 계약을 맺은 이후 뮤지컬 ‘어쌔신’, ‘블랙 메리포핀스’ ‘왕세자 실종사건’ 등에 출연하면서 약속은 지켜졌다.
‘미생’이 크게 히트한 이후 영화 드라마 장르 구분 없이 러브콜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는 차기작으로 연극을 선택했다. 대 선배 박정자(72)와 연상연하 커플로 호흡을 맞추는 ‘해롤드 앤 모드’다. 그는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 비로소 스스로를 채우는 느낌이 든다”며 연극배우 출신인 부모의 영향도 큰 것 같다고 했다.
“부모님은 제가 태어난 뒤 생계를 이유로 배우의 길을 포기하셨어요. 그런 가정환경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왜 연극하는 사람들은 가난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동시에 무대의 소중함도 알게 됐고요.”
무대에 치중하다가 드라마와 영화 쪽으로도 고개를 돌린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관객이 없어 접는 공연을 많이 봤다”며 “방송을 통해 얼굴을 알린 뒤 무대에 서면 관객이 조금이라도 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몇 년 전부터 드라마 활동을 늘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9일부터 무대에 오르는 ‘해롤드 앤 모드’는 지난해 11월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에서 일찌감치 예매율 1위를 차지할 만큼 주목받고 있다. 그는 연극 연습을 위해 필리핀 세부로 떠나는 ‘미생 포상휴가’도 반납했다.
‘해롤드 앤 모드’는 다음달 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3만~6만 원. 02-6925-5600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