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인열전]씨월드고속훼리 이혁영 회장
씨월드고속훼리 이혁영 회장은 지역 내 다문화가정의 든든한 후원자다. 이 회장이 2013년 다문화가정 자녀 제주 여행에 동행해 식사 중인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씨월드고속훼리㈜ 제공
“양로원에 계신 할아버지 고향이 제주도인데 30년 넘게 못 가셨어요. 저희는 가서 재미있게 놀다 왔는데….” 인사를 하고 돌아서던 남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할아버지가 못내 마음에 걸린 것. 이 회장은 “할아버지도 꼭 제주도 여행을 보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여 뒤 남매의 할아버지를 포함해 제주도가 고향인 복지시설 어르신들이 이 회장 후원으로 ‘귀향 투어’를 다녀왔다. 여객선을 타고 고향 땅을 밟은 어르신들이 ‘소원을 이뤘다’며 이 회장의 손을 꼭 잡았다. 이 회장은 “그때 남매를 만나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많구나’라고 생각했다”며 “그때부터 봉사단체 직함이 하나둘 늘어 지금은 7개나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랑의 유람선’ 씨스타크루즈호.
○ 타향에서 일군 성공신화
그가 목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4년. 외삼촌이 시작한 연안여객선 사업을 도와주러 목포에 오면서부터다. 1990년대 들어 사업이 어려워져 외삼촌이 사업을 포기하면서 1992년부터 직접 회사를 맡았다. 이 회장이 사업에 성공하게 된 것은 타고난 성실함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때문이었다.
기회는 1998년 외환위기 때 찾아왔다. 다른 선사들이 부도가 나면서 리스사들이 대여한 선박 회수에 나섰다. 부산에 있는 리스사 임원이 제주 항로를 운영할 새로운 회사를 맡기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 “성실하고 믿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며 그에게 선사 운영을 제안했다. “당시 사기를 당하고 집도 없는 시절이었어요. 하도 힘들어 목포를 뜨려는 생각도 했었어요.”
이 회장은 “고향 친구들 사이에 ‘전라도에서 사업하면서 잘산다’는 소문이 났는데 망해서 가면 사람 꼴이 뭐가 될까라는 생각에 죽어라 뛰었다”고 말했다. 4년 만에 선박 대여료를 모두 갚고 선사를 정상화시켰다. 이 회장은 여객 수요가 늘자 2011년부터 씨스타크루즈호를 투입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으로 씨월드고속훼리를 11년 연속 제주 기점 화물 및 여객 수송률 1위 선사로 키웠다.
○ 나누고 봉사하는 키다리 아저씨
이 회장은 6년 전부터 목포복지재단 이사장을 맡아 다문화가정과 소녀소녀가장, 조손가정, 새터민을 돕고 있다. 매주 화요일 560여 명에게 따뜻한 점심을 대접하는 ‘사랑의 밥차’는 이런 봉사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목포시가 20억 원을 출연한 목포복지재단은 출연금 이자로 운영되지만 크게 부족해 이 회장이 매년 1억 원씩을 부담하고 있다. 이 회장의 ‘아름다운 여행’은 15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매년 봄가을에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계층 아동 300여 명을 ‘사랑의 유람선’에 태우고 제주로 여행을 떠난다. 그는 매년 여행 때 뱃삯을 제외한 경비 5000여 만 원을 사비를 털어 충당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로 경영이 힘든 상황에서도 지역사회를 향한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목포지역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 11월 광주지검 목포지청과 함께 빈곤층 가정에 ‘사랑의 연탄’ 2200장과 생필품을 전달했다. 지난해 추석 명절에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성금 3000만 원을 목포시에 기탁하기도 했다.
나눔과 봉사는 그의 삶의 일부다. 교회 장로인 이 회장은 십일조 헌금을 내듯 지금도 급료에서 10분의 1을 떼내 나눔을 실천하는 데 쓴다. 키가 160cm도 안 되지만 주위에서 그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