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2015년 벽두부터 ‘환율 공포’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말 발표한 ‘2015년 경제산업전망’ 보고서에서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특히 한일 간 경쟁이 치열한 정유와 자동차업종이 수출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 고부가가치 부문에서 한일 정유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한 데다 자동차 분야도 북미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엔화 약세를 활용해 가격인하 공세를 펼치면 정유 자동차뿐만 아니라 부품, 기계류, 조선 등 전방위적으로 파급 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돼 국내 주력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일 신년사에서 “환율과 유가의 불안정한 움직임은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에게 상당한 도전”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통상 달러화 대비 원화가 약세면 한국 수출기업들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커져 호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달러화 강세는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 한국의 대미 수출비중은 전체 수출의 11%에 불과해 원화 약세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올해 미국이 금리 인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신흥국의 자본 유출이 급증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신흥시장이 위기에 빠지면 그만큼 한국 수출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달러화 강세가 한국 경제에 기본적으로 호재이지만 미국을 제외하고 다른 국가들이 경기 침체에 빠진 데다 원자재 등의 수입 가격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은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엔화 약세의 영향으로 한일 기업 간의 생산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잇따라 해외에 생산기지를 짓는 데 비해 일본 업체들은 자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파나소닉은 일본 내의 유휴 시설을 활용해 신규 투자를 최소화하는 한편으로 부품 회사들에도 국내 유턴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생산라인이 일본으로 이전하더라도 중국 현지 판매용 제품은 중국 공장에서 계속 생산된다. 파나소닉 가전제품의 일본 내 판매액은 5000억 엔 전후로 이 가운데 약 40%를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다.
파나소닉이 생산 거점을 일본으로 유턴하는 것은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데다 해외 인건비 상승으로 다른 나라에서의 생산 이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파나소닉은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 떨어지면 가전제품 이익이 연간 18억 엔 감소한다. 특히 엔화 가치가 달러당 120엔대로 떨어지면 비용을 절감해도 큰 폭의 수익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일본 제조업은 그동안 엔화 강세와 인건비 절감 등을 위해 생산 거점을 해외로 이전해 왔으나 2013년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대로 떨어진 이후로 일부 기업이 유턴 움직임을 보여 왔다.
정세진 mint4a@donga.com·최예나 기자 / 도쿄=배극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