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글로벌 戰場을 가다]<11>롯데그룹 ‘동남아 교두보’ 베트남
① ‘롯데센터 하노이’ 내 롯데백화점의 지난해 9월 2일 개장 당일 모습.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출입문 셔터를 내려야 했을 만큼 고객들이 많이 몰렸다. ② 베트남 사람들의 주요 이동수단은 오토바이다. 호찌민에 있는 롯데마트 남사이공점은 2000여 대의 오토바이를 한꺼번에 수용하는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③ 롯데마트가 베트남 고객들을 겨냥해 만든 저렴한 닭고기 도시락. 가격이 1만9900동(약 1027원)에 불과하다. 호찌민=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롯데그룹 제공
지난해 12월 11일(현지 시간), 회색빛 하늘 아래의 하노이는 막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상태였다. 하노이의 겨울철 평균 기온은 15∼20도. 한국인들에겐 가을철의 선선한 날씨이지만, 아열대 기후인 베트남 북부 사람들에게는 매우 춥게 느껴지는 온도다.
하노이 북쪽의 홍 강(Red River)을 건너 시내로 들어서자 오토바이의 물결이 더 길고 커졌다. 유명한 떠이 호수 옆 도로로 접어들자 거대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 옷자락을 모티브로 외관을 설계한, 하노이에서 두 번째로 높은 65층짜리 ‘롯데센터 하노이’였다.
롯데센터 하노이는 롯데그룹이 해외에서 처음으로 건설한 초고층 복합빌딩이다. 부지 면적 1만4000여m²(약 4200여 평)에 지하 5층, 지상 65층으로 높이가 272m에 이른다. 2009년 10월 첫 삽을 뜬 후 5년 만인 지난해 9월 완공했다.
롯데센터 하노이는 롯데그룹의 동남아 진출 전략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건물이기도 하다. 이 건물에는 마트(지하 1층)와 백화점(1∼6층), 각종 사무 공간(8∼31층), 레지던스(서관 33∼64층, 33층부터 건물이 2개 동으로 나눠짐), 호텔(동관 33∼64층) 등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가 한꺼번에 입주해 있다.
건물 건축을 주도한 이종국 롯데센터 하노이 대표는 “앞으로 롯데센터 같은 복합단지 프로젝트를 통해 그룹의 식품, 유통, 건설, 서비스 역량을 한데 모아 시너지를 최대화할 계획”이라며 “롯데는 베트남을 교두보로 삼아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으로 진출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계열사가 해외시장에 동반 진출하면 롯데의 브랜드 이미지를 일시에 강화하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도 장점이다.
롯데그룹이 베트남을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은 것은 젊은층이 많은 인구구조와 높은 경제발전 가능성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1∼6월) 기준으로 베트남 인구의 평균연령은 28세로, 한국의 38세보다 훨씬 젊다. 이에 따라 핵심생산인구(29∼45세)의 빠른 증가가 기대될 뿐 아니라, 경제 규모와 소비 여력의 가파른 성장도 예상된다. 베트남 인구는 지난해 6월 9300만 명을 돌파해 세계 14위 규모가 됐다.
건물 1층의 롯데백화점으로 들어가자 흰색 정장을 차려입은 엘리베이터걸이 기자 일행을 맞았다. “올라갑니다”라고 말하며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움직이는 그녀와 허리를 90도로 굽혀 손님을 맞는 직원들의 모습은 한국식 백화점 서비스 그대로였다.
롯데백화점 하노이의 구수회 법인장은 “기존의 베트남에는 없었던, 한국의 고급 서비스를 그대로 옮겨오려고 노력했다”며 “오픈 이후 매출이 목표 대비 140%에 이르는 등 고객들의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매장은 한국의 웬만한 백화점보다 더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기자가 나중에 돌아본 현지의 경쟁사 매장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제품의 수준과 구색도 기대 이상이었다. “이렇게 비싼 물건을 누가 사냐”고 묻자 구 법인장은 한국산 TV 세트가 전시된 가전 매장을 보여줬다. 70인치대의 초고화질(UHD) 곡면 TV 3대가 입구에 전시돼 있었는데, 한 대의 크기가 약간 작았다. 1000만 원이 넘는 제품이지만 이미 한 대가 팔려 임시로 다른 제품을 갖다놓은 것이었다. 구 법인장은 “베트남에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부유층이 존재한다”며 “정부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소득도 많아 실제 구매력은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호텔에는 개장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밀려들고 있었다. 특히 지난해 12월 11일에는 모든 객실이 예약된 상태였다. 베트남항공이 VIP고객 초청행사를 롯데호텔에서 연 덕분이었다.
○ “들쥐, 박쥐까지 먹으며 현지화 노력”
호텔과 백화점이 고급화 중심이라면, 롯데마트와 롯데리아는 현지화를 화두로 베트남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12일 호찌민의 롯데마트 남사이공점. 북쪽의 하노이와 달리 호찌민의 날씨는 길을 걸으면 땀이 조금씩 배어나올 정도로 더웠다. 남사이공점은 2008년 롯데마트가 국내 유통업체 중 최초로 베트남에 문을 연 점포다. 현지 업체와 차별화해 영화관, 문화센터, 볼링장 등 문화·편의시설을 완비해 큰 호응을 얻었다.
홍원식 법인장이 직접 안내를 자청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매장 옆의 오토바이 주차장이었다. 2000여 대의 오토바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1층의 식품매장으로 내려가자 손질한 개구리 뒷다리와 번데기 등 특이한 식재료가 눈에 띄었다. 닭다리와 간장, 밥을 함께 넣은 1만9900동(약 1027원)짜리 도시락도 독특했다.
“베트남 소비자들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해 왔다”는 홍 법인장은 “현지 직원 및 거래처와 친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이 잘 못 먹는 베트남 음식을 먹으면 직원이나 거래처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무척 좋아한다, 들쥐와 박쥐도 먹어봤다”며 웃어 보였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11월 27일에는 남부 휴양도시인 붕따우에 베트남 9호점을 열었으며, 12월 18일에는 호찌민에 10호점인 떤빈점을 냈다.
○ 예상치 못한 ‘내수 기업’의 모습
롯데리아는 그룹 계열사 중 가장 이른 1998년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햄버거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현지 고객들에게 낯선 햄버거를 판매하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었다. 초창기 롯데리아 주재원들은 메뉴 현지화를 위해 식문화가 비슷한 필리핀 시장을 적극 연구했다. 그리고 햄버거 대신 베트남 사람들에게 친숙한 치킨, 콜라를 함께 묶은 세트메뉴를 도입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과는 대성공. 현재 베트남 롯데리아의 매출 70%는 치킨 관련 메뉴에서 나온다.
또 한편으론 버거류 4종, 음료 5종, 드링크 1종을 2만 동(약 1032원)씩에 판매하는 ‘해피메뉴’를 도입해 한국 고객보다 주머니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베트남 고객들을 공략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현재 롯데리아는 베트남에서 글로벌 브랜드 KFC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49.6%)를 차지하고 있다. 호찌민, 하노이, 다낭 등 베트남 전역에 걸쳐 212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진출한 맥도날드가 롯데리아를 벤치마킹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강형희 롯데리아 베트남 법인장은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를 주최하고 우승팀에 미니축구장을 지어주는 등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베트남 사람들에게 더욱 친숙한 브랜드가 되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롯데그룹은 국내에서 전형적인 내수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본격적인 글로벌 기업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베트남 현지의 한국인 주재원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롯데그룹 전 계열사의 베트남 계열사 주재원은 2014년 12월 현재 53명에 불과하다. 2011년 말 이후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반면 현지인 직원은 그 사이 3500여 명에서 5900여 명으로 늘었다. 무려 70%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사업이 확장되고 점포 수가 늘어나도 주재원 확대 없이 현지인 채용을 늘려 운영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는 게 롯데그룹 측의 설명이다.
홍원식 법인장은 이와 관련해 “궁극적으로는 점장은 물론이고 법인장까지 현지인 또는 제3국인이 맡게 하는 것이 진정한 글로벌 기업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호찌민=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