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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판 하나하나, 치즈와 패티 차곡차곡 “잘 쌓았다”

입력 | 2015-01-07 03:00:00

[미술관 옆 식도락]⑩갤러리잔다리 ‘걸어가는 도시’ 전
미쓰버거의 명물 치즈버거




임선이 작가의 ‘극점 3’(위쪽 사진). 서울 남산 항공지도를 프린트해 잘라낸 종이를 쌓아올린 뒤 연기를 쐬며 촬영한 사진이다. 아래쪽은 체더와 고르곤졸라를 섞어 올린 미쓰버거의 치즈버거.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서울 홍익대 주변은 시간이 좀처럼 쌓이지 않는 공간이다. 3개월 만에 후루룩 올렸다 와르르 무너진 와우아파트의 잔상이 45년을 건너뛰어 문득문득 재생된다. ‘홍대 앞에 가자’는 말뜻의 기억은 화자(話者) 연령에 따라 어지럽게 갈라진다.

마포구 서교동 갤러리잔다리는 그 파랑(波浪) 끝없는 거리 가장자리에서 한 뼘쯤 물러난 구석에 숨어 있다. 10년 전 지어진 오피스 빌딩 지하 2개 층이 전시공간이다. 식당과 주점 밀물이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 건물 발치 골목 초입에 멈췄다. 행인들과의 어깨싸움을 피해 들어선 골목 공기가 10여 년 전을 닮았다. 귀를 잡아 찢던 호객 스피커 음악도 들리지 않는다.

16일까지 개인전을 여는 임선이 작가는 ‘걸어가는 도시-흔들리는 풍경’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감상적인 제목과 달리 작품은 극단적으로 노동집약적이다. 사진만 들여다봐서는 재료를 짐작하기 어렵다. 구름에 둘러싸인 외국 어느 높은 설산의 모형이겠거니 했건만 웬걸. 이게 서울 남산이란다.

남산 상공에서 촬영한 항공지도를 각 변 1m, 80cm 크기 종이에 수천 장 프린트한 뒤 등고선을 멋대로 상상해 엮으며 일일이 칼로 도려냈다. 두께 3mm 정도의 종이판을 하나하나 쌓아올린 재조립 남산 모형인 것. 풀이 마르면서 의도한 형태를 변형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접착제를 쓰지 않고 그냥 쌓았다. 한쪽에는 가운데를 도려낸 가장자리 종이판만 따로 쌓아 만든 ‘네거티브 남산’ 계곡이 있다. 쌓기 작업에만 꼬박 닷새가 걸렸다. 작품 앞에 ‘절대로, 절대로 만지지 마세요’ 호소문을 붙였다.

남산은 ‘산’일까. 아니면 호텔과 타워첨탑과 아파트와 공원을 얹어 짓누른 언덕배기일까. 작가는 국립극장, 호텔, 학교 건물의 콧대를 확 낮춰 끌어내리고 능선은 날카롭게, 산세는 가파르게 왜곡해 세워 올렸다. 보는 이에 따라 해석과 감흥의 방향은 달라지겠지만 울림의 크기는 확실하다. 잘 쌓았다.

다시 유흥가 파도를 7분 정도 헤쳐가 닿은 골목에 ‘미쓰버거’(02-6094-3372)가 있다. 공간이 널찍한데 간판은 자그맣다. 회전율에 사활을 거는 동종 업소와 달리 테이블 간격이 널찍널찍하다. 혼자 앉아 먹어도 옆자리 커플의 힐끔거림이 충분히 멀다. 조혜진 사장은 주방 벽 뒤에 숨어 좀처럼 홀 쪽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주문과 계산, 음식 운반은 홀 매니저가 전담한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조 사장은 첫 직장을 10개월 만에 그만두고 혼자 여행을 떠났다. 띄엄띄엄 재취업해 생계를 해결하며 돌아다닌 나라가 26개국에 이른다. 6년 전 합정동에 여행테마카페를 열었다가 갑자기 호주로 떠나 2년간 요리를 배웠다. 거기서 맛있게 먹은 게딱지 햄버거를 팔고 싶어 가게를 냈지만 인기 메뉴는 치즈버거다. 차림은 깔끔하지만 살짝 짜다. 그럼에도 찾을 만한 가게인 까닭은 이 동네에서 찾기 힘든 한적함에 있다. 조 사장은 “손님 끌기보다는 음식 맛내기에 집중한다. 복닥거리는 걸 못 참는 성격이긴 하다”고 했다. 이곳의 시간은 어떻게 쌓일까. 버거는, 잘 쌓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