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벅에게는 친구들과 해야 할 일들(duties)이 있고, 그에게 익숙한 삶이(his familiar life) 바로 이곳에 존재합니다. 이 모든 것을 버리고(throw it all away) 야생으로 돌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토끼를 쫓고(chasing rabbits), 숲을 뛰어다니고(running through the woods), 밤에는 서늘한 산들바람과 함께 잠들고(sleeping with the cool breeze of night) 아침엔 환한 태양 아래서 눈뜨는 상상들을 하는 순간 그는 금세 우울해지고 맙니다. 이 야성의 부름은 벅이 거부하기엔 너무나 벅찹니다(too much for Buck to resist). 그리고 때때로 그는 이 야성을 자신에게서 느낍니다. 다른 개가 벅에게 달려들면 벅은 맹렬하게(ferocious) 돌변하죠. 다른 개들과 사냥을 할 때도 그의 야성은 느껴집니다. 사냥감(prey)에게 가까워지면 불타는 듯한 숨소리(fiery breath)를 느끼고 말죠.
‘야성의 부름’에서 벅은 폭력을 통해 자신의 야성의 본능을 깨닫습니다(Buck realizes his wildness through violence). 다른 개들이나 늑대들과 싸우면서, 또 다른 동물을 먹기 위해 사냥하면서 그의 본능을 깨닫죠. 그렇다면 법이 있고 문명(civilization)이 있는 인간은 어떨까요? 우리 역시 여전히 폭력을 좋아할까요(do we still like violence)? 폭력적인 영화나 비디오 게임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뭘까요? 이렇게 발전된 기술과 문명 속에 살면서 왜 아직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져가며 상처 주는 걸까요(why do people still yell, throw things, and hurt each other)? 그리고 왜 세상엔 아직도 전쟁이 존재하는 걸까요(why is there still war in this world)? 생각해 보세요. 아마 우리도 야성의 부름을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