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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다

입력 | 2015-01-07 03:00:00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다’고 쓰인 그림엽서.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에서 산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이 엽서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정색하고 강조하고 있는 사진과 문구 때문이었다. 그 뜬금없음이 내 웃음보를 작동시킨 것이다. 알다시피 유럽의 오스트리아는 알프스 산맥에 걸쳐 있으며 국토의 60%가 산지인 산악국가다. 그리고 캥거루란 단연코 없다. 캥거루는 오직 오스트레일리아에만 있다.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우리가 ‘호주’라고 부르는 남반구 대륙에만.

이 엽서의 등장 배경. 짐작하겠지만 두 나라 이름이 혼동을 일으킬 만큼 비슷한 점이다. 실제로 오스트리아에 와서는 캥거루를 찾는 관광객이 있다고 한다. 그게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캥거루를 찾아 오스트리아로 관광을 오는 여행자가 끊이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덕분에 이 엽서 역시 꾸준히 팔리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기념품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그런데 혹 오스트리아(Austria)와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라는 흡사한 이름 사이에는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뒤져 봤다. 결론은 ‘노(No)’. 오스트리아는 동쪽을 뜻하는 라틴어 ‘오리엔탈리스(Orientalis)’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말이 독일어 ‘오스트(Ost)’로 변했는데 알프스를 품은 바바리아 지역 방언으론 ‘오스트(Aust)’가 됐다. 여기에 ‘지역’을 뜻하는 ‘ria’를 붙여 만든 게 ‘오스트리아’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는 라틴어 ‘테라 오스트랄리스(Terra Australis·땅+남쪽)’에서 유래했다. 오스트리아는 ‘동쪽 땅’, 오스트레일리아는 ‘남쪽 땅’이라는 뜻이다.

역사엔 이런 오해가 많다. 신대륙 원주민을 ‘인디언(인도인)’이라 부른 것이나 죄수를 식민(植民)한 탓에 호주 국민을 ‘죄수’의 후손이라 간주하는 것이 그렇다. 18세기 후반 호주 개척 당시에 영국이 죄수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 1788년 이후 80년간 16만5000명을 헤아린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건 이것뿐이다. 그 죄수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모를뿐더러 관심조차 없다. 이들은 우리가 지레짐작하는 중범죄자가 아니었다. 먹을 게 없어 어쩔 수 없이 닭이나 물건을 훔친 장발장 같은 생계형 절도범들이었다.

1760년 이후 영국의 도시는 산업혁명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는다. 원인은 주민 과잉. 일자리가 없어 술독에 빠져 사는 이가 속출했다. 자연스레 도둑도 들끓어 런던 교외가 산적 소굴로 변해 버렸다. 대개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물건에 손을 댄 빈민인데 당시엔 형사법도 없고 붙잡아도 수용할 교도소가 온전치 않았다. 그래서 물 위의 폐선에 가뒀다. 이들을 신대륙의 정착민으로 보내려는 생각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호주를 격리시켜야만 할 강력범죄자들이 만든 국가로 예단하는 것은 실례다.

우리나라에도 오스트리아와 관련한 재미난 오해가 있다. 겨울올림픽 개최지 평창의 횡계리는 1950년대부터 스키장으로 이름났는데 거기엔 ‘오수도리’라는 산장이 있었다. 이 ‘오수도리’가 ‘오스트리아’에서 온 것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오수도리’는 오스트리아의 일본식 발음 ‘오수도리아’에서 나왔다. 부수베리 계곡(정선군)이나 불바라기 약수(양양군) 같은 토종말이라고 생각했던 이에겐 좀 뜨악한 이야기지만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오스트리아는 서양 알파인스키의 원조국. 1911년 테오도르 폰 레르히라는 오스트리아 육군 소령이 스키를 일본에 소개했고, 그 10년 후 우리나라에도 전래되면서 오스트리아라는 국명이 따라 들어온 것이다.

무엇이든 사실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나 몰이해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대한항공 KE086편의 ‘땅콩 회항’ 사건만 봐도 그렇다. 사건은 승무원의 기내 서비스가 매뉴얼을 따르지 않았다는 ‘확신’에서 비롯됐다. 부사장은 그걸 지적했고, 사무장은 그렇지 않음을 입증하려다 충돌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매뉴얼을 담은 태블릿을 열지 못해 현장서 확인하지 못한 ‘사실’, 그건 과연 뭘까. 답은 ‘승무원 맘대로’(http://news.donga.com/Society/3/03/20141215/68539220/1)다. 매뉴얼엔 견과류 서비스에 관한 규정이 아예 없다. 식음료 서비스가 항공기 출발 후부터나 가능한 공항이어서 서비스할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아예 규정을 만들어 두지 않은 것이다. 어설피 알 바에는 아예 모르는 게 낫다. 단순한 오해로 빚어진 대한항공의 파국과 승무원의 고초를 보며 이 금언의 무게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된다.

―인스브루크(오스트리아)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