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서울 성북구에 있는 조립식 판넬로 된, 25㎡(7.6평) 크기의 집에 이사 온 건 지난해 5월이었다. 이삿날을 제외하곤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지만, 월세 20만 원은 꼬박꼬박 냈다. 집주인 박모 씨(78·여)가 떠올리는 이모 씨(46·사망)에 대한 기억이다.
남자의 집에서는 TV를 틀어놓은 소리가 자주 들렸다. 혼자 살면서 가끔 외출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챙이 달린 모자나 비니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동네 복지관에서는 하루이틀 꼴로 그에게 음식을 갖다줬다. 음식을 문밖 고리에 걸어놓는 식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은둔생활을 한 건 아니었다. 20대 초반엔 이라크에 가서 공사 일을 한 적도 있다. 국내에서도 각종 공사현장을 누비며 열심히 일했다. 이 씨의 여동생(43)은 “오빠가 성격도 활달했고, 사람들을 만나서 곧잘 어울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10년 전쯤 몸이 부쩍 안 좋아졌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약만 먹었다.
병세가 깊어지자 턱 주변 피부가 나빠지면서 얼굴도 흉해졌다. 이 씨는 6개월 전쯤부터 부쩍 의기소침해져서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여동생에게는 “(내 얼굴) 보기가 흉하고 걷기도 힘드니 조카에게 보여주기 싫다”며 “오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여동생은 지난해 말 이 씨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오빠, 뭐 먹었어? 심심해?’ ‘심심해’ ‘알았어, 그러면 애들 방학했으니까 보낼게. 방 치워놔.’ ‘응.’
닷새가 지난 4일 오후 4시 20분경, 이 씨의 집에선 ‘펑’ 소리가 나며 불이 났다. 서울 성북소방서에서 출동해보니 집밖에 있던 LPG 가스통이 집안에 있었다. 불은 빨리 꺼졌지만, 이 씨는 의식이 없는 채로 홀로 발견됐다.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5일 오전 7시 57분 숨을 거뒀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 씨는 사고발생 10분 전 여동생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사랑했다, 잘 살아라.’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