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1월의 주제는 ‘배려’]<3>아버지와 아들, 대화가 필요해요
늘 감사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언제나 아버지였다. 하지만 자식을 개천이 아닌 바다에서 키우기 위해 애쓰는 ‘개천의 용’은 버거웠다. ‘이만큼 지원해 주는데 그것밖에 할 수 없느냐’는 무언의 압박은 어깨를 짓눌렀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아들은 언제나 죄스러웠다. 죄의식은 소통을 막았다. ‘나도 이만큼 열심히 하고 있다. 아버지가 살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지 않느냐’는 항의는 속으로 삭였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자(父子) 관계를 원만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었다.
기자와 아버지의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대한민국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한다. 이남옥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장은 “부자관계는 어느 관계보다 무뚝뚝하고 데면데면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자신의 분신인 아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인생 설계를 해주고 싶은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려는 아들 사이의 묘한 경쟁심이 부자관계를 어색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초등학교 2학년 운동회 때 아버지와 삼각 달리기를 하는데 내가 넘어져 꼴찌를 했어요. 민망하기도 하고 혼날 것 같아 눈도 못 마주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내게 ‘아플 텐데 울지 않고 끝까지 뛴 네가 최고다’라고 말해주셨어요. 내게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응원해주는 영원한 후원자시죠.”
이 씨는 그런 아버지를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의 말은 일단 끝까지 듣는다. 이 씨의 아버지는 “아이가 ‘잔소리’라고 여길 수 있는 조언을 많이 하는데도 언제나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자기 생각을 말한다”며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이런 자세를 보며 항상 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30년 동안 진로 문제를 빼면 제대로 대화한 기억이 없는 기자에게 우선 아버지와 공통적인 대화 소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며 흥행하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을 아버지와 보기로 했다. 3일 오후 주말을 맞아 연인이나 친구들과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와 단둘이 영화 시작 시간을 기다렸다. 일부러 시작 시간에 맞춰 갔지만 10분이 10년 같았다. 어두운 영화관 안에 들어가서야 마음이 놓였다. 영화가 끝나고 용기를 내 물었다.
“영화가 아버지 시대 이야기던데 어땠어요?”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고작 영화 한 편으로 녹아내렸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작은 시도가 관계를 변화시켰다. 배려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세상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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