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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정유수익 악화… 2015년 적자 예상 vs 기회! 생산비용 절감효과 2년 지속

입력 | 2015-01-08 03:00:00

[저유가의 두 얼굴]
친환경 에너지-車 수요도 급감 vs 고효율산업 변신할 ‘골든타임’




‘생산비 절감이란 달콤한 사탕을 먹고 나면 구조조정이라는 쓴 약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5대 국책연구기관이 7일 내놓은 ‘유가 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단기적으로는 저유가가 한국 경제에 축복이지만 길게 보면 쉽지 않은 과제를 던진다고 지적했다. 싼 휘발유와 생산비 절감의 단맛에 빠져 있다가 산업구조 개편의 적기를 놓치면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다.

○ 단기로는 축복, 장기로는 부담

유가 하락이 ‘오일쇼크’를 유발한다는 논리는 한국인에게 익숙지 않다. 1973년 1차 석유파동, 1979년 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유가 상승은 곧 한국 경제에 재앙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소비자와 기업은 저유가 상황을 크게 반긴다.

경제 주체들의 자금 사정은 유가 하락을 계기로 다소 나아질 수 있다. 유가가 10% 떨어지면 경제 전체의 구매력은 9조5000억 원, 가구당 소비 여력은 연간 17만 원 정도 늘어난다. 물론 소비 여력이 늘어나려면 유가 하락이 제품가격 하락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와 관련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유가 하락이 가격에 반영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물가구조 개선 등의 노력을 강화하고 내수 활성화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국책연구원들은 올해 두바이유 배럴당 가격이 지난해보다 35% 정도 낮은 60달러 수준을 유지한다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오르고, 물가상승률은 0.1%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최근 저유가로 올해 신흥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보다 0.4%포인트 높은 4.7%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런 장밋빛 효과는 2년 뒤면 끝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생산비용 절감 효과로 기업 수익성이 개선되지만 2017년경부터는 저유가가 일반화돼 더이상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정유,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산업의 약점이 본격적으로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정유업체들은 지속적인 저유가 상황을 버티기 어렵다. 미리 원유를 많이 사두는 정유업체들의 경우 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이전에 비싸게 사둔 원유를 정제해 만든 휘발유 등을 싸게 만들어 팔게 돼 이익이 줄어든다. 이미 정유업계의 매출액은 2012년 1∼9월 기준 116조6000억 원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98조1000억 원으로 감소한 상태다. 국내 정유 4사는 올해 정유 부문에서만 1조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 발등에 불 떨어진 기업들

조선업체들은 미국, 유럽의 ‘오일 메이저’들이 발주 물량을 줄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 업체의 사장들은 5일 신년사에서 ‘유가 하락에 따른 위기와 생존 전략’을 올해의 주요 화두로 제시했다.

특히 국내 업체가 주력하는 해양플랜트 시장은 올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조선해운분석기관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전 세계에서 발주된 해양플랜트는 393기였다. 2013년 전 세계에서 발주된 해양플랜트(683기)보다 크게 줄었다.

과거 저유가는 자동차산업에 호재로 작용했다. 유가가 떨어지면 이익이 많이 남는 중대형 차량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다. 하지만 최근 각국 정부가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에 나서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가솔린, 디젤 엔진을 단 중대형 차량 판매가 늘면 정부가 요구하는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맞추기 어렵다.

또 저유가로 자동차업체가 개발한 친환경차를 찾는 소비자도 줄어든다. 친환경차는 일반차량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제조사들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친환경차 개발에 나섰지만 저유가로 수요가 줄어드는 데다 중대형 가솔린과 디젤엔진의 연비 개선에 다시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뿐만 아니라 정부 지원금에 크게 의존하는 태양광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도 저유가의 유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저유가로 신재생에너지의 필요성이 줄면 정부가 예산을 축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정부 지원금이 줄어들면 가격이 올라 수요가 급감한다.

국책연구원들은 또 장기간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원유 수출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유국의 위기가 신흥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꺾일 가능성도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유가 하락 때문에 물가가 급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유가 하락만으로 디플레이션이 유발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저유가에 따른 가격 하락이 소비를 진작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성태 KDI 연구위원은 “유가 하락이라는 기회를 활용해 산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구조조정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추진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미래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 / 강유현·권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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