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산층 현장보고서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미국인들의 자동차 구입 경향도 금융위기 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 전에는 이른바 장기대여(리스)보다 구입을 훨씬 더 선호했는데, 지금은 리스를 택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9월 ABC뉴스는 새 차 판매 시 4대 중 1대가 리스로 팔려 나간다고 보도했다. 2008년도에는 6대 중 1대 정도였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구입할 때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대금을 매달 갚아 나간다. 리스 기간이 끝나면 차는 딜러가 도로 가져가지만 대출은 대출금을 다 갚으면 온전히 자기 차가 된다는 점이 다르다.
먼저 훨씬 경비가 싼 조건으로 리스가 나왔다. 매달 200달러 정도만 내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차를 탈 수 있고 3년 후에 반납하면 된다. 최근에는 기름값이 많이 내리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최근 수년간 많이 올라 여행 등의 운행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니 운행거리 제한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기 차도 아니니 엔진오일 등도 자주 갈 필요가 없다는 계산도 들어간다.
그러나 판매상에게는 리스가 더 손해다. 판매할 때 얻을 수 있는 고율의 이자 및 수수료를 리스 때는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리스가 끝나고 돌려받은 차를 처치하는 것도 골칫거리다.
미국의 자동차 딜러 시스템은 우리와 다르다. 원칙적으로 미국의 딜러들은 차를 일괄 구매해 보유하고 있다가 소비자들에게 판다. 소비자가 주문하면 자동차 회사에서 차를 받아 소비자에게 건네는 우리네 영업점과는 다른 방식이다. 그러니 미국의 딜러들은 보유한 차가 쌓이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처분해야만 한다. 돈이 돌아야 사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스마저도 엄두를 못 내는 사람들은 중고차 매장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들 중 거의 대부분이 중고차마저도 현금을 내고 사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게 문제다. 이들은 결국 사려는 중고차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구입을 해야 한다. 지난해 9월 “지금 미국인들 중 단돈 400달러(약 40만 원)의 비상금이 없는 이들이 허다하다”고 한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2013년 현재 ‘서브프라임 자동차담보대출’이 총 자동차담보대출의 27%를 차지하며 과거 5년간 130% 증가했고 지난해 1분기에만 전년 동기에 비해 15%나 증가해 1456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이런 무자격자들에겐 고율의 이자(최고 연 23%)가 붙는다. 보통 신용도가 높은 대출자들에게 부과되는 이자율은 평균 12.9%다. 주로 금융위기에 파산 신청을 했던 이들이 이 대출을 받는다. 자격 미달인 사람도 차를 살 수가 있어 처음엔 얼씨구나 할 것이다. 게다가 어떤 때는 차 가격의 배가 넘는 대출을 해줘 남는 돈을 일단 아쉬운 대로 생활비로도 쓸 수 있다. 하지만 고율의 이자와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에 거의 대부분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한다.
차를 빼앗기고 빚을 고스란히 떠안는 딱한 처지가 되는 것이다. 빚으로 운영되는 ‘가불경제’의 폐단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회사 쪽에서 보면 크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대출금 회수가 잘 안 될 때라도 자동차 회수는 주택처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새는 기술 발달로 자동차 엔진을 원격으로 꺼버릴 수도 있으니까. 무자격자에게 함부로 대출을 해주는 은행의 속내야 고수익을 노리는 것이겠지만 그만큼 고위험이 따른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복잡한 형태의 채권과 파생금융상품으로 물타기를 한다. 이런 식으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 2008년 금융위기 전과 하등 달라진 게 없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입에서 뱅뱅 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