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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권순활]최경환보다 ‘문희상’이 경제 성패 변수다

입력 | 2015-01-08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삼성전자가 작년 4분기와 연간 실적을 오늘 발표한다. 4분기 실적은 ‘슈퍼 어닝 쇼크’였던 3분기보다는 낫겠지만 반등이라고 반길 수준에는 못 미칠 것 같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그리스 경제가 다시 휘청거리고 산유국들은 유가 급락의 직격탄에 흔들린다. 일본 엔화 약세와 미국 달러 강세까지 겹치면서 새해 벽두부터 금융과 실물경제 흐름이 심상치 않다.

전자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철강 등 한국의 5대 주력산업 선도기업들은 동시에 수익성 악화에 직면했다. 재정 건전성은 이미 위험수역(水域)으로 들어섰다. 중국 등 신흥 경제국 경기도 하강세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은 “한국 경제를 글로벌 쓰나미로부터 지킨 3대 방파제가 모두 약해진 위험한 국면”이라고 진단한다.

올해 경제도 쉽지 않지만 내가 더 걱정하는 것은 내년과 2017년이다. 내년 4월 총선, 2017년 12월 대선이 예정돼 있다. 선거의 해만 되면 정치가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1996∼97년의 노동·금융 개혁 및 기아자동차 구조조정이 임기 말 집권세력의 취약한 리더십과, 대선 이해득실만 따진 야당의 발목잡기와 맞물려 실기(失機)하면서 외환위기로 치달은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경제위기를 예방하고 재도약을 가능케 하는 답은 나와 있다. 경기 급랭을 막고 금융 불안을 최소화하면서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키우는 규제 혁파가 시급하다. 곧 ‘세금 먹는 하마’가 될 공무원연금이나 대기업 정규직 과보호도 이대로 놔둘 수 없다.

1997년 10월 미국의 한 컨설팅회사는 ‘한국은 행동은 없고 말만 무성하다(words without deeds)’라고 꼬집었다. 청와대까지 386 운동권 사고(思考)에 물든 2000년대 중반에는 일은 않고 말만 많은 ‘NATO(No Action, Talk Only) 공화국’이란 말이 유행했다.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올 상반기, 늦어도 연내에 구조개혁과 규제혁파의 구체적 결실이 없다면 또 하나의 NATO 사례로 추가될 우려가 크다.

‘한강의 기적’ 시대에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미래를 못 읽고 수구적 논리로 반대해도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건설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절박한 정책이라도 국회에서 법안을 깔아뭉개면 ‘발표 따로, 결과 따로’다. 국회의 다수결 원칙을 무너뜨린 악법 탓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처럼 몇몇 야당 의원이 길바닥에 누워 반발하는 정치 퍼포먼스를 벌일 필요도 없다.

우리 경제가 재도약에 성공하느냐, 대추락의 실패를 맞느냐를 가를 이 결정적 시점에 대통령,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경제부처, 경제의 핵심 주체인 기업인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들 못지않게 경제 활성화와 구조개혁 법안을 국회에서 다루는 정치권, 특히 현실적으로 법안 통과의 키를 쥔 야당의 책임이 무겁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장관들을 경시하진 않지만 나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나 다음 달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될 문재인 박지원 이인영 의원 등이 경제 성패(成敗)의 더 큰 변수라고 본다.

문 위원장은 5일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울 건 돕겠다”고 했다. 새정연 싱크탱크에서 나온 “부자 대(對) 서민 간 제로섬 게임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폐기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도 신선하다.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야당이 고질적 한계인 ‘안보 불안과 경제 무책임’ 이미지를 벗고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새정연이 미국 민주당이나 영국 노동당 수준의 변신에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에 큰 힘이 되고 집권으로 가는 길도 빨라질 것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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