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 선수는 다소 억울했을 수 있다. 만약 그 감독이 술집에 가지 않았다면 그가 술을 마신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선수와 감독의 갈등은 이처럼 사소한 일에서 자주 벌어지곤 한다. 그 선수만 해도 “자기들도 다 하면서…”라며 입을 쭉 내밀었을 것이다.
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시무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양상문 감독(사진)의 코칭스태프 금주 선언이었다. 그는 “코칭스태프는 시즌 중 절대 술자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야구장에 나올 때 전날 술 먹은 얼굴을 절대로 보이지 않겠다”고 했다.
양 감독의 ‘소통법’은 대개 이렇다. 그에게는 일방적인 소통이 없다. 그 대신 스스로 깨닫게 화두를 던진다. 훈련이건 생활 태도건 마찬가지다.
지난해 시즌 중반 LG 지휘봉을 잡았을 때는 “5할 승률이 될 때까지 경기 중 홈런이 나오더라도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기쁨의 표현은 9회가 끝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더 길게 보면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것도 끝난 게 아니다. 홈런 친 선수를 맞으러 나갈 시간에 다음 플레이를 연구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양 감독을 보면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 많은 준비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틈날 때마다 연구하고 공부한 내공이 배어 나온다.
양 감독의 야구 인생은 공부와는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부산고-고려대를 졸업한 그는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프로 대신 실업팀 한국화장품에 입단했다. 한국화장품에서 뛰면서 2년간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85년 롯데에 입단했다. 논문은 프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썼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 최초의 석사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공부. 어디서 많은 들어본 소리다. 바로 ‘야신’ 김성근 한화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다. 김 감독이 2013년 쓴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라는 책에는 양 감독에 대한 대목이 나온다. 김 감독은 “2002년 LG 감독 시절 투수 쪽은 양상문에게 맡겼다. 아마 내가 LG에서 2, 3년 더하고 그만뒀으면 양상문에게 감독을 줬을 것이다. 그 정도로 양상문을 믿었고 처음부터 그를 제대로 된 리더로 키우고 싶었다”고 썼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인연도 돌고 돌아 양 감독은 지난해 중반 LG를 맡아 꼴찌이던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양 감독의 LG 야구가 올해는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