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돌아오지 못한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난해 7월 25일, 충남 아산경찰서에 “아파트에서 시비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된 날이었다. 아산서 배방지구대 소속 경찰관 남편은 순찰을 돌다 현장에 출동했다. 난동을 부린 취객을 상대로 음주측정을 했더니 혈중 알코올농도는 0.310%로 만취 상태였다. 취객은 갑자기 남편의 뒤에 다가가 흉기로 오른쪽 목을 찔렀다. 곧이어 남편의 동료 경찰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남편은 피를 흘리면서도 취객의 팔을 잡고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얼굴도 흉기에 맞았다. 고(故) 박세현 경위(순직 당시 46세)의 부인 성주희 씨(46)는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4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에 참석해 남편을 떠올리며 흐느꼈다.
이날 고 박 경위를 포함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바쳐 일하다 순직한 경찰관 3명에게 ‘위민경찰관상’이 수여됐다. 순직 경찰관 가족들은 고인을 떠올리며 시상식 내내 눈물을 흘렸다.
서울 은평경찰서 교통안전계 팀장 고 박경균 경감(순직 당시 52세). 2013년 11월 팀원을 대신해 교통단속에 나섰다 오토바이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대신해 시상식에 참석한 딸 미희 씨(25)는 한때 ‘아버지 같은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미희 씨는 “돌아가신 뒤에야 아버지가 힘들게 일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위험한 일인지 생각도 못했어요. 아버지께 죄송하고, 고맙고….”
지난해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다가 헬기 추락사고로 숨진 강원도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소속 소방관 5명의 유족도 참석했다. 순직 소방관을 기리는 영상이 상영되자 고 이은교 소방교(순직 당시 31세)의 홀어머니 최경례 씨(57)는 아들을 떠올리며 통곡했다. 최 씨는 “아직도 너무 보고 싶고 미안하다. 지금까지 (아들 생각에) 두 시간마다 잠에서 깰 정도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했다.
고 정성철 소방령(순직 당시 52세)의 외아들 비담 씨(25)는 아버지의 제복을 입고 시상식장에 왔다. 정 씨는 “상은 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받기 때문에 제복을 입고 왔다. 아버지가 입었던 제복을 수선해서 맞춰 입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제복 공무원 가족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았다. 고 신영룡 소방장(순직 당시 42세)의 부친 신부섭 씨(71)는 “아들이 국가와 민족의 부름에 따라 떳떳하게 갔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고 박인돈 소방경(순직 당시 50세)의 부인 김영희 씨(48·여)는 “아들(25)이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행사 진행을 맡은 채널A 김태욱, 황수민 아나운서는 매 순서마다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를 외쳤다.
시상식에 앞서 이날 수상 경찰관 2명에 대한 특별승진 임용식도 진행됐다. 김용서 대전지방경찰청 둔산경찰서 유성지구대 경사(46)와 김도정 부산지방경찰청 형사과 경위(48)는 각각 경위와 경감으로 특진했다. 강신명 경찰청장과 승진자 부인이 두 사람의 어깨에 새 계급장을 달아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은 언제나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가 공기처럼 느끼고 있는 이 자유가,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고 있는, 제복입은 용사들 덕분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고맙다”고 말했다.
수상자들은 상금 중 일부를 기부할 뜻을 비치기도 했다. 한승현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 항공단 경장(34)은 상금 전액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김도정 경위는 상금 중 절반 정도를, 김용서 경사는 300만 원을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겠다고 전했다. 정지곤 해군작전사령부 특수전전단 제1특전대대 상사(42), 박현만 육군 제6군단 사령부 인사참모처 중령(48)도 상금을 형편이 어려운 부대원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사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님, 강신명 경찰청장 등이 참석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