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이나 더 살겠다고 배를 갈라?”
2년 전 정금양 씨(가명·75)는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70대 나이에 개복수술을 감행하는 것은 위험해보였다. 주변인들도 “암 수술 해봐야 늘그막에 고통스럽기만 하다”며 수술을 만류했다.
하지만 주치의의 생각은 달랐다. 수술 예후를 평가하는 도구를 바탕으로 분석해보니 정 씨는 고령이라고 해도 수술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복강경을 이용해 최소한의 부위만 절개를 한다면 회복에도 무리가 없어보였다. 결국 정 씨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
정 씨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그녀는 무사히 수술을 마친 뒤 나흘 만에 퇴원했고, 현재까지 통원 치료를 잘 받으며 살고 있다. 맞벌이 중인 딸의 자녀들을 돌봐줄 정도다. 나이 때문에 지레 겁먹고 포기했다면 누리지 못했을 일상이다. 그녀는 “나이 70이 넘었다고 치료를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고령자 암수술 후에도 생존율 높다
정 씨의 사례처럼 암 선고를 받은 70대 이상 고령 환자들은 암수술처럼 위험도가 높은 수술을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수술 과정에서 젊은이보다 위험부담이 크고, 회복도 더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국립암센터로부터 단독 입수한 ‘70대 이상 고령환자 암수술 후 생존율’에 따르면 이같은 인식이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2000년대 초반(2000~2004년)에 비해 중후반(2005~2009년)의 고령 환자를 추적 조사한 결과, 암 수술한 뒤 5년간 생존율이 크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에서 2003년 대장암수술을 받은 70대 환자 중 5년 간 생존한 사람은 58.2%였지만, 2009년 수술을 받은 환자 중 5년간 생존율은 74.7%로 나타났다. 반면 70세 미만 연령에서는 2003년(81.1%)과 2009년(87.1%)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손대경 국립암센터 부속병원 대장암센터장은 “환자의 부담을 더는 수술법이 발달하고, 수술 후 관리 시스템이 개선됐다”며 “자신의 체력만으로는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 힘든 고령환자들이 이런 변화에 힘입어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다른 암수술에서도 보인다. 국립암센터에서 2000~2005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70대 중에선 5년 이상 생존율은 59%로 나타났다. 하지만 2006~2010년 수술한 70대에서 생존율은 82%로 뛰어올랐다. 유방암 수술도 2000년대 초반에 수술한 70대의 생존율은 59.2%였지만, 수술기술이 좀더 발달한 2000년대 후반에는 73.9%로 높아졌다.
최근 대형병원에서 담낭제거술을 받은 김호일 씨(78)는 최근 발달한 수술법과 회복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스마트 70대’다. 그는 우선 ‘노인포괄평가’를 통해 자신의 신체 상태를 확인했다. 복강경을 이용한 담낭제거술이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뒤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서 제공한 ‘조기 회복프로그램’도 이용했다. 단순 나이가 아니라 신체상황을 면밀히 체크하고, 알맞은 치료법을 선택해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이처럼 고령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예후를 가늠해 적절한 수술법을 적용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는 “나이를 기준으로 수술 가능여부를 평가해선 안 된다”면서 “질환, 일상생활 능력, 정신기능, 영양상태 등 다면적 평가를 통해 수술 고위험군과 저위험군을 판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다고 수술을 피하지 말고, 자신의 신체가 수술법에 얼마나 적합한지 먼저 따져볼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에 비해 회복이 더디다는 것도 오해다. 김선한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2009년부터 2년간 복강경 결직장암 수술을 받은 303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70세 이상 환자들의 평균 가스배출일, 대변배출일, 항생제 사용일수 등에서 70대 이하 연령과 큰 차이가 없었다. 수술 후 입원 기간도 8~9일로 비슷했다.
이는 복강경, 로봇 수술 등 최소 침습수술이 발달해 신체 무리를 줄이고, 조기 회복프로그램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연세가 많은 분들도 얼마든지 빨리 정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며 “수술 회복에 대한 지나친 공포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