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커가 바꾼 상권
여기도 저기도 화장품 간판 한국 화장품을 선호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화장품 매장 수가 8년 만에 5배로 늘어났다. 6일 오후 명동예술극장 근처 화장품 거리를 관광객과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명동역 6번 출구로 나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이다. 6일 오후 이곳에는 20명 남짓한 중국인 관광객(유커·遊客)들이 모여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월 임대료가 2억5000만 원에 달하지만 중국인 관광객 덕분에 전 지점 가운데 최고 효자 매장이 됐다. 중국동포 출신 직원인 이화 씨(28)는 “한국 연예인을 동경해 한국 화장품을 찾았다가 재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대량으로 구매한다”고 말했다.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 일일 방문객 수는 평일 3000명, 주말 5000명이다. 이 가운데 중국인 관광객 비중은 80%다. 필요한 품목만 1, 2개 사는 내국인과 달리 중국인 관광객은 선물을 하거나 오래 두고 쓰기 위해 상자(1상자 12개) 단위로 구매한다. 2층에는 외국인 전용 매장이 있고, 직원 30명 가운데 22명은 중국어가 가능하다.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의 화장법을 따로 설명해주는 등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가 제공된다.
○ 명동 화장품 매장 8년간 5배로
을지로입구역에서 명동성당까지 이르는 명동길에만 화장품 매장 25곳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불경기에도 땅값 비싼 명동에서 버틸 수 있는 업종은 화장품 가게뿐이라는 것이 상인들의 평가다. 중국인 관광객이 좋아하는 마스크팩만 모아서 파는 매장도 등장했다. 올마스크스토리 직원 한모 씨(30)는 “한국 마스크팩은 유해물질이 없고 피부가 좋아진다는 믿음이 있어 중국인 관광객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올마스크스토리는 명동 내 매장을 5곳까지 늘리면서 성장하고 있다.
○ 명동의 ‘다양성’ 되살려야
명동이 속한 서울 중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화장품 소매업 매출액이 1위다. 중구 화장품 소매업 매출의 60.1%(1781억4900만 원)가 명동에서 발생한다(2011년 사업체 기초통계조사). 가로수길 등 강남의 핫플레이스에 밀려 활기를 잃어가던 명동이 중국인 관광객 덕분에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하지만 명동 상인들에겐 반갑지만은 않다. 과거 명동은 의류 잡화 화장품 등이 고루 모여 있고 ‘옷 좀 입는다’는 패션리더들이 찾던 곳이었다. 반면 현재는 화장품과 중국인 관광객에게만 의존하고 있다. 다양성이 부족해지고 외풍에 취약해졌다는 뜻이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