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미가 2015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상금왕을 목표로 뛴다. 신지애, 김하늘 등 한국선수들은 물론 일본선수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약속이라 더 강한 의지를 품고 있다. 사진제공|르꼬끄골프
■ ‘효녀골퍼’ 이보미의 새해 각오
“지난해 아빠를 떠나보내며 많이 힘들었죠
올해는 아빠와 행복했던 순간만 떠올릴것”
‘아빠와의 약속’ JLPGA 상금왕 강한 의지
3월 새 시즌 개막 앞두고 11일 미국 전훈
“앞만 보고 달려가겠다. 아직은 이루고 싶은 게 정말 많다.”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이보미(27)가 새해 굳은 다짐을 했다.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이보미를 경기도 수원의 스크린 골프장에서 만났다.
이보미는 지난해 큰 아픔을 겪었다. 가장 사랑하던 아버지가 8월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을 잃은 듯했고, 너무 큰 슬픔에 다시 골프채를 잡는 것조차 망설였다. 시즌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강원도 춘천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직은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다.
이보미는 “아직도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돌아보면 뒤에 계신 것만 같다. 그립고 보고 싶다.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가족이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했던 시간이 ‘참 행복했구나’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아빠가 계실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왜 이제야 느끼게 됐는지…”라며 잠시 아버지와의 추억에 잠겼다.
아버지는 이보미의 전부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뒤로는 한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 이보미의 부친 고 이석주 씨는 늘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생전 그는 “나는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보미가 알아서 잘한다. 나는 그냥 따라다닐 뿐이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딸을 칭찬했다. 자신을 믿어주고 항상 뒤에서 힘을 주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보미에게는 할 일이 남아 있다.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이 힘들었지만, 다시 골프채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물론 그것조차 쉽지는 않았다.
“처음엔 망설였어요. 아빠가 돌아가시고 2주 만에 투어로 복귀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혹시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나를 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죠.”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조금씩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다. 그런 생각 때문에 경기를 치르면서도 집중할 수 없었다. 이보미는 “투어로 복귀하자 팬들이 따뜻하게 맞아줬다. 그러나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웃는 내 자신을 보면서도 ‘이렇게 행동해도 되나’라고 내 자신에게 되묻게 됐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경기는 안 풀렸고 자꾸만 내 자신이 움츠러들었다”며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사진제공|르꼬끄골프
● JLPGA 투어 상금왕을 향해!
이보미는 2015년 목표를 상금왕으로 정했다. 그러나 쉽지 않다. 안선주(28), 신지애(27)에 이어 김하늘(27)까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 합류했다. 한국선수도 그렇지만, 일본선수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상금왕이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러나 꼭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아빠와 약속했어요.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나에게도 기회가 올 것 같아요.”
2014년 이보미의 상금왕 등극이 유력했다. 8월까지 3승을 올리며 상금랭킹 1위를 달렸다. 그러나 시즌 막판 안선주에게 추격을 허용했다. 이보미는 “아빠가 계셨더라면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에 뒷심이 부족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마음을 잡지 못했다.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고, 상금왕이 되고 싶은 생각만 앞섰다”며 아쉬워했다.
상금왕을 놓쳤지만 새로운 것을 얻었다. 그녀는 “안선주 언니와 경쟁하면서 모든 부분에서 내가 뒤져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골프는 느껴야만 실력이 는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게 골프다. 지난해 느낀 걸 올해는 이겨내서 반드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겠다”고 다짐했다.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이보미에게 출발은 3월이다. 시즌 개막과 동시에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자신을 향해 주문했다.
“이보미가 가장 잘 하는 건 열심히 하는 것과 노력뿐이에요. 땀을 흘리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결과에 따라가지 않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뒤따라와요.”
● 내 골프인생은 100점!
이보미에게 골프는 많은 것을 선물했다. 그녀는 “골프를 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하다”며 “골프선수로서 내 인생은 100점이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보미는 2007년 KLPGA 투어에 데뷔해 2010년 상금왕, 다승왕, 최저타수상을 수상했다. 2011년 일본으로 건너가 통산 8승을 거뒀다. 그 덕분에 한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의 인기는 톱스타급이다. 골프장뿐만 아니라 길에서도 그녀를 알아보는 팬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모자에 새겨진 스폰서의 대부분도 일본기업이다.
이보미는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만으로도 나의 골프인생은 성공했다. 100점을 줘도 아깝지 않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은 일본에서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골프선수가 아니었더라면 누릴 수 없는 행복이다. 모든 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된 이보미는 제2의 인생에 대해서도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지금부터 천천히 또 다른 이보미를 꿈꾸고 있다. 이보미는 골프 매니지먼트와 스포츠심리학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지금까지는 골프만 생각하면서 달려왔어요. 다행히 좋은 성적을 냈고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어요. 정말 행복해요. 하지만 골프를 오래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골프채를 놓게 된다면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어요. 선수로서 많은 경험을 갖고 있지만, 배움이 부족한 탓에 그런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100%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공부한 뒤 내가 가진 노하우를 제대로 전달해주고 싶어요.”
결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지난해 동갑내기 박인비의 결혼을 보면서 부러웠다. 그녀는 “아직 결혼에 대한 계획은 없다. 하지만 나도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골프선수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싶다. 결혼은 서른두 살쯤 하고 싶다”고 감춰온 계획을 털어놓았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트위터 @na1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