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엇인지, 과연 실체가 있기는 한 건지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한 권의 교과서 같다. 76년이란 긴 세월 동안 서로에게 꽃이 돼준 노부부를 통해 사랑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대사가 많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활이 나오는데 그것만으로도 즐겁고 슬프고, 사랑이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를 보고 한 네티즌이 올린 감상평이다. 올 겨울 전국은 ‘사랑 신드롬’에 빠졌다. 강원도 산골 마을에 사는 아흔여덟 조병만 할아버지와 여든아홉 강계열 할머니의 러브스토리 덕분이다. 이 노부부는 영화 ‘님아’를 통해 76년이란 세월 동안 서로 어떻게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곧 영화는 실화이며 한 부부의 인생 말년을 기록한 영상이기도 하다. 지난 11월 27일 개봉한 ‘님아’는 12월 20일 기준 1백80만 관객을 모으며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2008년 3백만 관객을 동원한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의 흥행 기록을 깰 수 있을지도 관심사. 영화를 연출한 진모영 감독은 흥행 사실이 믿기지 않는 눈치다.
“올해로 18년째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영화는 지난해 독립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처음 접했는데, 그때 총 관객 수가 5천명이었어요. 그거에 비하면 ‘님아’의 성적은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습니다. 영화를 찍을 때부터 극장에 걸리기까지,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보고 좋아해주실지 몰랐어요.”
영화는 어딜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봄에는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고, 여름엔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치고, 가을엔 마당에 쌓인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하고, 겨울엔 눈싸움을 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20대 신혼부부 케미와 다를 바 없다. 어두운 밤 화장실 가는 게 무서워 할아버지를 깨우는 할머니, 그런 아내를 위해 화장실 앞에서 구성진 목소리로 ‘정선아리랑’을 부르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관객의 얼굴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조병만 할아버지는 조실부모하고 친척집을 전전하다 대장간을 하던 장모의 눈에 들어 스물세 살에 처가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당시 할머니 나이는 열네 살. 아이나 다름없는 부인을 위해 할아버지는 3년 동안 부부관계도 하지 않고 아내를 키우다시피 했다. 농사일도 시킨 적이 없어 할머니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고운 외모와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다. 영화 내내 “사랑해요” “고마워요”를 연발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설정 아니야?’하는 의심이 살짝 들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건 괜한 트집일 뿐이다.
“커플 한복을 보고 제작진이 준비해 준 게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두 분이 한복을 입기 시작하신 지는 20년 정도 되셨대요. 젊어서는 먹고사는 게 힘들어 좋은 옷을 입을 기회가 없었는데, 자식들이 장성한 뒤에 할머니가 생일이나 명절 선물로 커플 한복을 지어달라고 해서 하나둘 씩 모으신 거예요. 집에서는 해진 한복을 입고, 외출할 때만 새 한복을 꺼내 입으셨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처럼 장난치고 삐치고 하는 모습도 평생 그분들이 해오던 태도예요.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갖는 유일한 불만도 장난이 너무 심하다는 거였어요(웃음). 젊었을 때는 더 심해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잡아온 뱀을 보고 기절한 적도 있고, 밤에 길을 걷다가 깜짝 놀라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진 적도 있으시대요(웃음).”
누가 가르쳐 준 적 없지만, 몸으로 부대끼며 사랑을 배우고 평생 그 사랑을 지켜낸 노부부의 이야기가 깊은 감동을 준다.
20대도 공감한 ‘영원한 사랑’의 위대함
조병만·강계열 노부부의 사연은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인 2011년 KBS ‘인간극장’을 통해 먼저 세상에 알려졌다. 그 방송을 보고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진 감독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직접 찾아가 촬영을 허락 받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혹시라도 영화 촬영 중 당신들의 건강이 나빠져 촬영을 접게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은 결국 현실이 됐다. 촬영을 시작한 지 8개월째 되던 어느 날, 이들 부부에게 이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유난히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할아버지의 기력도 점점 쇠해졌다. 영화에는 친구를 잃고 홀로 남은 강아지를 바라보는, 머지않아 다가올 또 다른 이별을 예감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몇 개 월 뒤 할머니는 남편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인다.
“할아버지요. 먼저 가거든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두고 얼른 나를 데리러 와요. 나만 홀로 오래 남겨두지 말고…, 우리 거기서 같이 삽시다.”
평생 학교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지만 몸으로 부대끼며 사랑을 배우고, 한 평생 그 사랑을 지켜낸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들의 아름다운 이별에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가 예상을 뒤엎고 20대 젊은 관객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진모영 감독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영원한 사랑, 순수한 사랑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을 이어갈수록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할머니에 대한 언론 및 대중의 과도한 관심이다. 수익 배분에 대한 계획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진모영 감독은 “할머니를 지켜드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잘 되더라도 할머니가 힘들어진다면 그걸 만든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그는 다큐멘터리를 고집할 생각이다. 처음 만든 영화로 상업 영화 못지않은 흥행과 수익을 달성했지만, 오로지 그의 관심은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제가 뭐하는 사람인지 굳이 구분하자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다큐멘터리를 TV에서 틀면 독립 PD가 되고, 영화관에서 틀면 영화감독인 거죠. 앞으로도 ‘님아’와 같은 인류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요. 한 가지 바라는 건, 좀 더 많은 분들이 독립영화에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제도적·행정적인 지원도 많이 생겨났으면 하고요.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을 많은 분들이 기운을 내셨으면 합니다.”
글·김유림 기자 | 사진·김도균, 영화사하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