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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희균]어떤 아이를 원하시나요

입력 | 2015-01-09 03:00:00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현재 자녀가 있다면, 혹은 장차 자녀가 생긴다면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가?

여기 8가지 선택지가 있다. 창의적인 사람, 따듯한 사람, 적극적인 사람, 정의로운 사람, 성격이 원만한 사람, 다재다능한 사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의지가 강한 사람.

이 항목은 한국교육개발원이 매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여론조사의 설문 중 하나다. 이 질문이 시작된 것은 1994년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인의 교육 의식 조사 연구’에서다. 당시 응답자 중 자녀가 있는 1138명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41.3%)을 압도적으로 많이 꼽았다. 아마도 이들이 주로 산업화, 압축 성장 시기를 지내면서 노력의 결과물을 지켜본 세대여서가 아닐까 싶다.

2014년 같은 질문을 받은 성인 2000명은 어떤 자녀를 원했을까? 8가지 모두 소중한 가치라서 나부터도 한 가지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기에 결과를 흥미롭게 들여다봤다. 20년 전보다 훨씬 교육열이 드세지고,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다재다능 또는 열심히 노력하는 자녀를 원할 것이라는 예단을 갖고 말이다.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따듯한 사람을 원한다는 응답이 16.3%로 가장 많았다. 20년 전 겨우 4.6%로 꼴찌였는데 말이다. 1994년 7.2%에 불과하던 정의로운 사람도 13.0%로 늘어났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13.8%)은 2위로 꼽히긴 했지만, 20년 전과 비교하면 비율이 훨씬 줄었다.

수년째 교육 담당 기자를 하면서 지켜본 현장, 주변의 평범한 부모들을 떠올려 보니 언뜻 납득이 안 가는 결과였다. “에이, 이건 좀 내숭 아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자녀가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부터, 한 가지라도 더 많이, 남들보다 더 긴 시간 공부하길 바라는 부모가 늘어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다들 교육 때문에 허리가 휜다고 아우성치면서 생뚱맞게 따듯한 자녀를 원한다니….

다시 설문으로 돌아오면 ‘가정에서 자녀를 지도할 때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을 묻는 항목도 있다. 이번에는 학교 공부, 사회성, 예의범절, 취미 특기, 정서적 감수성, 도덕성, 폭넓은 경험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결과를 보면 1994년에는 사회성이 32.7%로 가장 많았지만 2014년에는 17.9%로 눈에 띄게 줄었다. 반면 2014년에는 예의범절(28.2%)이 최고로 꼽혔다. 이 부분에 이르니 ‘이런 가치들이 점차 사라져서 역설적으로 이런 아이들을 더 원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정작 어른들이 예의와 온기와 정의에 목마른가 보다 하는 생각 말이다.

문득 몇 년째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동생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신입생 중에는 종종 수업 중에 옷에 실례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처음 이런 일을 겪었을 때 더러워진 아이의 옷을 벗겨 빨고 아이를 잘 씻긴 뒤 급한 대로 자기의 점퍼를 바지처럼 둘러 입혀 집에 보냈다고 한다. 다음 날 아이가 손에 들고 온 것은 빨기는커녕 검은 비닐봉지에 꾸깃꾸깃 쑤셔 담은 교사의 점퍼였다고 한다. 처음엔 놀랐지만 몇 년째 이런 일을 겪자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고 했다. 멋모르고 이 비닐봉지를 들고 온 아이가 장차 예의범절을 갖춘 따듯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고리타분한 말이지만,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원한다면 먼저 부모가, 또 어른이 그런 덕목을 실천하고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서 올해 나는 따듯한 어른, 예의범절을 갖춘 엄마가 되겠다는 새해 목표를 세웠다. 여러분도 한 가지씩 원하는 덕목을 골라 보길 권한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