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여기 8가지 선택지가 있다. 창의적인 사람, 따듯한 사람, 적극적인 사람, 정의로운 사람, 성격이 원만한 사람, 다재다능한 사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의지가 강한 사람.
이 항목은 한국교육개발원이 매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여론조사의 설문 중 하나다. 이 질문이 시작된 것은 1994년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인의 교육 의식 조사 연구’에서다. 당시 응답자 중 자녀가 있는 1138명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41.3%)을 압도적으로 많이 꼽았다. 아마도 이들이 주로 산업화, 압축 성장 시기를 지내면서 노력의 결과물을 지켜본 세대여서가 아닐까 싶다.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따듯한 사람을 원한다는 응답이 16.3%로 가장 많았다. 20년 전 겨우 4.6%로 꼴찌였는데 말이다. 1994년 7.2%에 불과하던 정의로운 사람도 13.0%로 늘어났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13.8%)은 2위로 꼽히긴 했지만, 20년 전과 비교하면 비율이 훨씬 줄었다.
수년째 교육 담당 기자를 하면서 지켜본 현장, 주변의 평범한 부모들을 떠올려 보니 언뜻 납득이 안 가는 결과였다. “에이, 이건 좀 내숭 아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자녀가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부터, 한 가지라도 더 많이, 남들보다 더 긴 시간 공부하길 바라는 부모가 늘어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다들 교육 때문에 허리가 휜다고 아우성치면서 생뚱맞게 따듯한 자녀를 원한다니….
다시 설문으로 돌아오면 ‘가정에서 자녀를 지도할 때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을 묻는 항목도 있다. 이번에는 학교 공부, 사회성, 예의범절, 취미 특기, 정서적 감수성, 도덕성, 폭넓은 경험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결과를 보면 1994년에는 사회성이 32.7%로 가장 많았지만 2014년에는 17.9%로 눈에 띄게 줄었다. 반면 2014년에는 예의범절(28.2%)이 최고로 꼽혔다. 이 부분에 이르니 ‘이런 가치들이 점차 사라져서 역설적으로 이런 아이들을 더 원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정작 어른들이 예의와 온기와 정의에 목마른가 보다 하는 생각 말이다.
고리타분한 말이지만,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원한다면 먼저 부모가, 또 어른이 그런 덕목을 실천하고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서 올해 나는 따듯한 어른, 예의범절을 갖춘 엄마가 되겠다는 새해 목표를 세웠다. 여러분도 한 가지씩 원하는 덕목을 골라 보길 권한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