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민정수석 항명/‘정윤회 비선논란’ 국회 질의]
오전 불출석 사유서엔 “업무때문에 못나가” 김영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해 12월 15일 대통령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왼쪽 사진). 김 수석은 9일 국회 운영위에 “대통령비서실장이 부재 중이고 긴급 상황에 대비해야 해서 국회에 나갈 수 없다”는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오른쪽 사진). 동아일보DB·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김 수석은 이날 불출석 사유서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이 운영위 참석으로 부재 중인 상황에서 긴급을 요하는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고, 민생안전 및 사건 상황 등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업무적 특성도 있어 참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야 간사가 김 수석의 출석을 거듭 요청하자 김 실장이 직접 나서 김 수석을 설득했다. 그러나 김 수석은 오후 2시경 “나는 사퇴할 거라 국회에 나가지 않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격분한 김 실장은 운영위 회의에서 “(김 수석의) 사표를 받고 (박 대통령에게) 해임하도록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수석비서관의 해임 건의가 이처럼 공개적으로 이뤄진 전례는 없다. 김 수석이 상명하복 문화가 뚜렷한 검찰 조직에서 30년 이상 지냈고, 김 실장은 그의 검찰 선배라는 점에서 그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청와대는 김 수석 사의 표명 배경에 대해 자세한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김 수석의 사의 배경을 놓고 다른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 주변에선 ‘정윤회 동향’ 문건 파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내부의 불협화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실장이 김 수석을 배제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다. 민정수석실 안팎에선 일부 현안에 대해선 김 수석을 건너뛰고 업무 지시와 보고가 이뤄졌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이 과정에서 김 실장과 김 수석의 ‘감정’이 쌓여 왔고, 9일 사건의 한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날 오전 운영위 출석에 앞서 김 실장 주재로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렸을 때만 해도 김 수석의 이런 돌발 행동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30분 정도 간략하게 회의를 했는데 김 수석이 이런 결정을 하리란 낌새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당혹한 표정이 역력했다. ‘정윤회 문건’ 파문 당시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이 박 대통령의 측근 비서관들을 공격했을 때보다 더 심각한 ‘기강 붕괴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야당은 “공직기강이 완전히 무너졌고 청와대 내부 시스템이 붕괴됐다”며 청와대를 정조준했다. 기강 붕괴와 관련해 김 실장 책임론은 더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내부에서 암투가 벌어진 데다 항명 사태까지 빚어지면서 전면적인 청와대 쇄신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어떤 쇄신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