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지지불태(知止不殆)라는 말도 좋아한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아니하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리니(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구절 속의 한 부분으로, 아마도 인간의 헛된 욕망을 경계하는 말인 듯싶다. 그러나 ‘욕망’ 대신 인간의 ‘실수’를 대입해 보면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일단 그것을 중간에서 멈출 줄 알면 크게 위험한 일은 없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멈추다(止)’라는 말이 더할 수 없이 푸근하게 다가온다. ‘멈춘다’는 것은 이미 그 앞에 어떤 행동이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전제돼 있는 것이다. 이 경구는 주체인 내가 상황을 장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안도감을 주지만 모든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해 주는 것이어서 매우 인간적이다.
조현아도 멈출 줄 알았으면 위험을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자에게 겸손과 절제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힘든 것인가? 결국 사태는 끝까지 가서 개인의 몰락이요, 기업의 불운이며, 세계적인 망신으로 이어졌다. 또래의 젊은이라면 기껏해야 차장 혹은 대리가 될 나이에 거대 기업의 전무니 부사장이니 하는 직함을 가진 자매에게 때마침 ‘미생’의 드라마로 한껏 자의식이 고조된 젊은이들과 일반인들이 분노를 폭발시킨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부자와 권력자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천박한 노예근성이다. 가난한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하듯이 부자도 똑같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고 우리는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헤겔이 말했듯이 노예가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성실한 노동과 고귀한 영혼에 의해서이므로.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