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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공감백서 맞아, 맞아!]회사 안의 ‘경단녀’ 워킹맘

입력 | 2015-01-12 03:00:00

아이 돌보느라 ‘한직’ 몰리고… 경력 부족해서 ‘승진’ 밀리고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여성’ 문제가 사회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회사에 남은 워킹맘들도 이에 못지않은 ‘경력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워킹맘들이 임신 출산 육아에 할애하는 시간과 노력은 치열한 승진 경쟁 속에서 중대한 ‘결함’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자의타의로 주요 핵심부서에서 일할 기회가 차단되는 워킹맘들은 “우리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도 경단녀”라고 외친다.

올해는 한국의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많아지는 ‘여초(女超)시대’ 원년이 될 것이라고 정부는 보고 있다. 여초시대에 여성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성의 생애주기 특성을 고려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 임신 출산이 승진 발목


대기업 직장 경력 9년 차인 이선민(가명·36) 씨는 지난해 10월 임신 20주 차에 들어선 어느 날 팀장에게 불려갔다. 남자 팀장은 그에게 출산 뒤 육아휴직을 쓸 것인지를 물으며 “업무공백이 생기면 과장으로 승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근속 연수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법조항이 있지만 현실은 법과 많이 달랐다. 이 씨 이야기를 들은 친구 중 한 명은 “그나마 대기업은 육아휴직을 쓰게라도 해주지 않느냐”며 “내가 다니는 중소기업에선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줬다.

승진은 인사단계 중 성 평등이 가장 이루어지지 않는 영역으로 꼽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3년에 공무원 1396명을 대상을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한 영역’으로 ‘승진’(49.1%)과 ‘보직 배치’(45.4%)가 꼽혔다.

워킹맘들은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스스로 주요 보직을 떠나기도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을 둔 최이수(가명·39) 씨는 지금 경영기획팀에서 일하지만 다음번 인사 때 인력개발팀의 교육 담당으로 지원할까 고민 중이다. 핵심 보직은 아니지만 비교적 출퇴근 시간이 규칙적이기 때문이다. 최 씨는 “최근에 아이가 ‘학원에서 어떤 형이 내 신발을 변기에 넣었다’며 울어 가슴이 아팠다”며 “아이가 학교나 학원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라고 말했다. 최 씨는 “차장 진급이 머지않은 상황에서 교육팀에 가는 게 커리어를 쌓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잘 안다”면서도 “마음은 점점 교육 담당 쪽으로 기울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워킹맘들은 이렇게 주요 보직에서 점점 멀어지기도 한다.

한 번 핵심 보직에서 멀어지면 나중에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 중견 제조업체에 다니는 김영혜(가명·42) 씨는 “육아 기간 중 한직(閑職)에 있었다는 이유로 끝까지 한직만 맴돌다 퇴사하는 여자 선배를 여럿 봤다”며 “한직에 있을 때 월급을 적게 받고 승진도 늦어지는 식으로 이미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다시 열심히 일하려 할 때는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아이 낳기 적절한 타이밍’은 없다

임신 출산 육아를 ‘전략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여성 직장인에게 임신하기에 가장 적당한 시기는 언제일까. 결혼생활 1년, 직장생활 3년차인 박세화(가명·31) 씨는 선배들로부터 정반대되는 조언을 들었다.

아이를 30대 중반에 낳은 A 선배는 “기왕 아이를 낳을 계획이면 빨리 낳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책임이 작은 낮은 연차에 육아에 집중하고, 중간 관리자가 되는 시기 이후에는 회사 일에 몰두하는 게 ‘성공적인 여성 직장인’이 되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아이를 20대 후반에 낳은 B 선배는 “3, 4년쯤 후 낳으라”고 조언했다. 입사 초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으려면 회사 일에만 집중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박 씨는 “두 선배의 조언을 들으니 더 헷갈린다”고 말했다.

많은 워킹맘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고 푸념한다. 돈을 써서 육아, 가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거나 아니면 고위직으로 오르는 것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신규 노동자 중 백인 남성이 소수에 그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보고 인사담당자가 노동력의 다양성을 관리하는 일을 주된 업무로 삼고 있다. 한국은 아직까지 인사관리가 남성 위주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미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양육의 책임을 주로 여성이 맡고 있는 게 현실인 만큼 회사들도 여성의 생애주기에 맞춰 직무 분배를 해주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며 “자녀가 어린 시기에 야근이 적은 직무나 비핵심 업무를 맡았던 경력이 평생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