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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내수 살리기의 적들

입력 | 2015-01-12 03:00:00


하임숙 경제부 차장

얼마 전 대학 동창들이 모여 신년회를 했다. 교수, 변호사, 학원 원장, 고교 영어교사, 정유회사 팀장에 연극배우까지 한자리에 모이고 보니 같은 시기에 같은 과를 다닌 친구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직업이 다양했다. 대학시절 이야기부터 자녀교육 경험담까지 주고받다 결국은 ‘살기 참 어렵다’는 주제로 귀결됐다. 가르치는 학생들이 취직이 안 되고, 사람들이 문화생활을 줄이는 바람에 연극계의 경기도 형편없으며, 유가 하락 때문에 회사에 비상이 걸렸다는 이야기였다.

어디 내 동창들뿐이랴. 동아일보가 지난해 12월 세 차례에 걸쳐 보도한 ‘한국경제, 10년불황 비상벨소리’ 시리즈에 따르면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마룻바닥재를 판매·시공하는 박모 사장은 최근 매출이 30% 줄어 울상이다. 인천 서구 연희동에서 돼지갈비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 사장도 매서운 겨울한파 속에서 떨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7월 취임한 이후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고, 두 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하는 한편 부동산경기 활성화 조치도 내놓았다. 부동산과 증시를 활성화해 내수경기를 살리고, 이를 통해 불황을 극복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였다. 그런데도 지난해 말 서울 명동거리의 ‘연말 특수’는 실종됐고 증시에서는 ‘산타랠리’와 ‘1월 효과’가 자취를 감췄으며 부동산 경기는 오락가락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왜 그럴까. 정부가 내놓은 정책 중 경기 활성화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내수의 적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해 10월 시행 이후 지금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들 수 있다. 이동통신사의 경쟁을 유도하고 가계의 통신비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소비자도, 기업도 불만이 크다. 최신 폰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억제하는 대신 구형 휴대전화는 보조금 한도를 풀어주기 때문에 “정부가 구형 휴대전화 소비촉진운동을 벌이는 듯하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최신 폰이 안 팔리니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의 실적은 말이 아니고, 문을 닫는 대리점들의 비명도 커지고 있다.

‘수학여행 축소’ 같은 정책도 내수 경기침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 금지됐던 수학여행은 지난해 6월 30일 조건부로 재개됐다. 하지만 3, 4학급 규모 미만의 여행이 권장되고 안전요원이 반드시 동행해야 하기 때문에 일선 학교들이 적극적으로 단체 수학여행에 나서긴 쉽지 않아 보인다. 수학여행철인 5월이 머지않았지만 여행사, 여행지 인근의 음식점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좋은 의도에서 도입한 정책도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문제는 역효과가 났을 때 이를 고치고 조율해야 하는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하느냐다. ‘내수 살리기’를 정부의 목표로 정했다면 각 부처가 좁은 시각으로 내놓은 정책 중 내수 살리기와 충돌되는 정책은 총리든, 부총리든, 대통령경제수석이든 나서서 없애거나 고쳐야 한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는 누구인가.

하임숙 경제부 차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