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에 맡겨 놓은 기억은 소외된 기억이다. 내가 기억하고자 하는 것을 적어 놓음으로써 ‘나는 그 정보를 소유하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머리에 새겨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소유냐 존재냐(에리히 프롬·범우사·1999년) 》
미국 시카고에 12주 동안 머문 적이 있다. 시가지에서 다소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방 한 칸을 얻었다. 아침잠을 깨우는 새, 나무 위의 청솔모, 차고 세일(garage sale)…. 아파트촌에 살던 이방인에겐 매일이 생활의 발견이었다. 이를 놓칠까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1000장에 가까운 사진은 현재 이동식저장장치(USB) ‘사진함’에 고스란히 있다. 열어보지도 않았다. 기억은 마음에 담는 것이지 사진에 묶이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삶의 방식을 존재지향과 소유지향으로 나눈다. 저자는 기억하는 방식도 지향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기억을 소유해야 할 것으로 여길 경우 오히려 단편적인 기억만 남는다. 사진을 보면 바로 “그래, 그 사람”, “그곳에 갔었지” 하고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기 쉽다. 반면 그 사람 또는 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듯 되살리려면 이전에 충분히 집중력을 기울여 봐뒀다가 마음에 완전히 그려내야 한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