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전후 70년은 과거사 극복할 타이밍… 민간이 소통 나서야”

입력 | 2015-01-13 03:00:00

[2015 격랑의 한반도/세계 석학에게 듣는다]
<하>日 동아시아 전문가 아마코 사토시 와세다대학원 교수




《 “나는 ‘역사 투쟁’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역사를 앞세운 정치 투쟁이라고 본다. 중국은 지금 의도적으로 역사를 파헤쳐 일본을 공격하고 한국과 연계하려 하고 있다. 중국의 영향권 안에 안 들어가려는 일본을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중국 및 동아시아 국제정치학자인 아마코 사토시(天兒慧·67)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1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동아시아 정세를 이렇게 분석했다. 아마코 교수는 “중국이 역사와 영토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일본을 비판하고 있지만 본질은 중국 외교 정책의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취임 이후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에서 벗어나 아시아태평양을 미국과 중국이 나눠 갖는다는 ‘21세기 대국관계’를 새로운 국가전략으로 삼고 있다”고 짚었다. 》  

아마코 사토시 와세다대 대학원 교수가 대학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에 할 말은 하는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한국의 최근 외교 전략은 어떻게 보고 있나.

“내가 묻고 싶다. 매우 갈등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일중이 센카쿠 열도에서 대립해 중국에서 반일 시위가 격화하고 일본 기업이 중국에서 빠져나가자 한국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다. 중국과 우호 외교를 적극 전개하면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패권적) 태도를 보면서 거리를 좀 둬야 한다는 사람이 한국에서 늘고 있는 것 같다. 중국과 ‘대등한 파트너’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우려가 학자나 외교관 사이에서 들린다. 한국이 중국과의 거리를 재설정하려 할 때 일본을 다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건전한 상황이다.”

한중일, 역사 앞세워 정치투쟁 중


그는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이 최근 역풍을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에서도 엄청난 돈을 뿌렸다. 필리핀 베트남 등 중국과 해양영토 분쟁 중인 국가들과 나머지 국가들 간의 분열을 노린 것이다. 이 때문에 캄보디아가 주최한 2012년 아세안 정상회담에서는 처음으로 공동 성명도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아세안 정상회담에서는 ‘아세안의 단결’이 강조됐다. 중국이 돈을 뿌린 나라들도 중국을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세안이 하나가 됐을 때 비로소 발언력을 갖게 된다고 인식한 것이다. 대만이나 홍콩에서도 중국의 강경한 자세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나는 중국에 할 말은 할 수 있는 대등한 관계를 만드는 중요한 시기가 아시아에 닥쳤다고 보고 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물론 내가 반(反)중국 연대를 말하는 건 아니다.”

―동아시아에 ‘신냉전’이 도래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떠오르는 중국을 경계한 미국이 재균형(re-balancing)이라는 형태로 아시아로 회귀해 반중국 망을 구축하고 일본이 여기에 적극 협력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상호 의존이 이 정도로 강해지고 구조적이 되면 진짜 대결은 피하게 된다. 친중 성향의 미국 학자들도 ‘중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평화)에 도전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그것만큼은 단호하게 대항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0년, 20년 후에도 팍스 아메리카나는 유지될 것으로 보나.

“어려운 얘기다. 중국이 매년 7%대의 경제성장을 계속하면 2020년에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미국을 추월한다. 추세로 보자면 미국이 수세다. 하지만 군사력은 그렇지 않다. 중국의 군사 전문가들은 2020년에 자국 군사력이 미국의 절반만 돼도 좋겠다고 얘기한다. 여기에 일본의 과학기술, 한국의 파워가 동아시아 정치 지형도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아세안도 공동체 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이 냉전 이후 국제사회 헤게모니 부재를 의미하는 ‘G제로’ 개념을 내놓았는데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을지라도 G1이나 G2가 국제 정치구조를 상징하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보다 상호의존적인 세계, 힘의 관계가 울퉁불퉁한 구조로 흘러갈 것이다.”

―향후 일중, 한일 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나.

“나는 일중 관계는 조금은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중국인은 한국인에 비해 의외로 냉철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나빠도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에 와버린다. 일종의 합리주의다. 최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일중 양국은 역사·영토 문제 등과 관련한 4개항에 합의하고 정상회담을 했다. 양국 정계, 재계, 민간 관계자가 움직이기 쉬운 환경을 만든 것이다. 환경이 조성되면 중국인은 금방 손을 내밀 수 있다. 오히려 일본인들이 아직도 가슴에 응어리가 남아 일중 관계 회복을 의심하고 있다.

반면에 한일 관계는 양국 국민감정이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빠졌는지 이상할 정도다. 나 같은 국제 협조주의자는 중국이나 한국에 대한 아첨꾼으로 비판받을 때도 있다. 정치 지도자들도 양국이 서로에 강경한 정책을 취하면 지지율이 올라갈 수 있다. 반일, 반한이 지지율 유지를 위한 하나의 옵션이 된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일중이 4개항에 합의한 것처럼 서로 반보 양보하는 프레임(틀)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일본은 무라야마 담화를 적극 지키고 한국은 이를 평가한다고 명기하는 것이다. 독도,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 문제도 서로 도발하지 않는다고 문서화하는 등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정상이 갑자기 만나 악수하고 미소 짓는다고 국민의 뒤틀린 감정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틀을 만들어 놓고 그 바탕 위에서 서로 자극하지 않고 관계 개선에 노력하면 양국은 다시 조화를 찾을 수 있다. 이는 특히 아베 신조 정부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아베 총리는 내년에 무라야마 담화를 대체하는 ‘아베 담화’를 내놓겠다고 한다.

“만약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내용이라면 이는 외교적으로 바보 같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바라는 바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도 엄청나게 반발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받아들인 국제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베 총리 주변에 현실적으로 외교 문제를 판단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자민당 의원의 52%가 일본 언론의 설문조사에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 담화를 바꿔야 한다고 응답했다.

“지금 젊은 의원들은 고노 담화가 나온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위안부는 없었다는 등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아사히신문 문제도 있었다. 사실 확인이 약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안부가 없었다는 것은 극단적인 이야기다. 기본적인 부분에서 고노 담화에 담긴 내용은 매우 합리적이고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전제로 문제를 생각해나가지 않으면 국가 간, 민족 간 관계가 꼬일 수밖에 없다.

보수 지지기반이 굳건한 아베 정권은 고노 담화에 손댈 이유가 없다. 예컨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계속했는데 자민당 내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원이 원하는 것을 의연히 단호하게 행동함으로써 의지할 리더라는 이미지를 세워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당내 입지가 다르다.”

후세가 배우는 역사, 3국이 공유해야

―아시아에서 전후 70년의 의미는 무엇인가.


“역사 문제를 일본인이 계속 끌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어떤 형태로든 역사 문제를 청산,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10년은 후퇴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후 70년이라는 시점은 역사 문제를 극복할 소중한 타이밍이지만 지금 그걸 기대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역사는 세대가 바뀌면서 ‘기억하는 역사’에서 ‘배우는 역사’로 바뀌고 있다. 배우는 대상으로서의 역사를 한중일이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과정에서 이분법적 접근은 버려야 한다. 예컨대 모든 일본인이 악인은 아니었을 것이고 모든 한국인이 선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중국의 난징대학살 희생자 규모가 정치적인 이유로 20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갑자기 늘어나는 식이면 역사를 공유하기 어렵다. 민간이 나서야 한다. 정부는 국익에 불리하면 맞아도 맞다고 얘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민간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서로 철저하게 소통하고 공유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 1947년 오카야마 현 출생

○ 1971년 와세다대 교육학부 졸업

○ 1986년 히토쓰바시대에서 ‘중국 혁명과 기층간부의 내전(內戰)기 정치동태’로 사회학 박사

○ 1986∼2014년 아오야마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와세다대 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과 교수 등으로 근무. 아시아정경학회 이사장, 와세다대 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장, 와세다대 아시아연구기구 현대중국연구소장 역임

○ 주요 저서=
‘현대 중국-이행기의 정치사회’(1998년), ‘중국·아시아·일본-대국화하는 거룡은 위협인가’(2006년), ‘아시아연합의 길, 이론과 인재육성 구상’(2010년), ‘일중 대립 시진핑의 중국을 읽는다’(2013년) 등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