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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출구 찾아야 할 박근혜 스타일

입력 | 2015-01-13 03:00:00


송평인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의 별명 중에서는 이런 것도 있다. 말이 안통하네트(마리 앙투아네트의 변형). 어제 기자회견을 본 사람 중에는 콘크리트 벽을 보고 얘기하는 기분이 든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라며 체념을 토로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저희 백성들은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습니다’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왔다.

예전에는 좌파정권이면 우파매체가 비판하고 우파정권이면 좌파매체가 비판했는데 이번 정권에는 좌우 매체가 합심해서 비판했는데도 씨도 안 먹혔다. 박 대통령이 고집이 세서 안 먹혔다고 볼 수도 있고 ‘카더라’ 소문만 물고 늘어진 부당한 공격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문고리 권력 3인방을 내칠 수 없다고 못박음으로써 공격자들에게 후퇴의 명분이 될 전리품도 남겨주지 않았다.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이명박 전 대통령도 광우병 시위에 밀려 청와대 뒷산에 올라 훌쩍거렸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고집 센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를 두고 ‘영국 안의 유일한 남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도 ‘청와대 안의 유일한 남자’로 불릴 만하다. 다만 유연성이 떨어지는게 문제다.

박 대통령은 모두 발언이 끝나고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딴 사람이 된 듯 어눌해졌다. 모두 발언에서 스마트팜, 할랄시장 같은 전문 용어를 수두룩하게 나열하던 어휘력도 크게 떨어졌다. 그런 식으로라면 면접시험은 100% 낙방이다. 저녁에 보고서는 열심히 읽고 공부하는지 모르지만 대화가 부족한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수다와 같은 대화다. 여성의 수다는 남성의 술자리 같은 것이다. 대처는 다우닝가의 총리 관저에서 회의가 길어지면 보좌관들을 위해 손수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 ‘수다’를 나눴다고 한다. 그것은 각계각층 국민을 청와대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나 장관들의 대면보고를 필요하면 조금 더 늘려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 등 예민한 질문에 답변할 때 억울해하는 감정이 강하게 느껴졌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씨와 이재만 등 세 비서관이 잘못이 없는 줄 진작 알았지만 이번에 검찰이 샅샅이 털어보니 정말 잘못이 없는 게 드러난 게 아니냐”고 말했다. 억울함이 근거가 없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이 억울하다고 해서 그 억울함이 국민에게 느껴지게 하는 것은 대통령답지 못하다.

영국 타블로이드판 신문 선이 휴양 중 옷을 갈아입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엉덩이 사진을 찍어 보도한 적이 있다. 독일 타블로이드판 신문 빌트는 “스타킹 차림의 영국 여왕 사진을 실으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분개했다. 그때 메르켈 총리는 “보도는 고상한 영국적 취향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고 소송제기는 하지 않고 끝내버렸다. 이런 총리의 반응에 대해 독일 신문들은 “진정한 위정자다운 면모”라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도 진정한 위정자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산케이 신문에 대해서는 외교문제도 있고 하니 대통령 본인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 좋겠다. 세계일보에 대해서도 사과문 정도로 타협을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이 ‘드물게 보는 사심 없는 분’이라고 언급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가정에 어려운 일이 있는 만큼 청와대가 안정되는 대로 사직을 허하는 것이 좋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민정계 최창윤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선된 뒤 영남 출신인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친노이긴 했지만 바른 소리 잘하는 유인태를 정무수석으로 뒀다. 박 대통령도 이제 생각이 좀 다른 사람을 써보면 어떨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