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
“김일성은 눈물이 많았어. 아이 때 봤는데 애들이 ‘아버지 원수님’ 하며 뛰어갔더니 그가 ‘내가 이 애들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아버지라고 하누먼’ 하면서 그러안고 눈물을 흘리더군. 하지만 김정일이 우는 걸 한 번이라도 봤어? 김일성이 사망한 지 며칠 만에 사람들 앞에서 크게 웃는 걸 봐.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아. 그러니 인민이 굶어 죽어도 꿈쩍도 안 하지.”
정치인이 흘리는 눈물의 힘은 남쪽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외모에서부터 할아버지 향수를 노린 것이 역력한 김정은은 집권 이후 눈물 흘리는 모습을 자주 노출했다. 이것이 우연이란 말인가.
물론 치밀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이라고 해도 설날 군부대에 가기보다는 보육원이 낫다고 평가하고 싶다.
보육원은 부모가 죽어 꽃제비가 된 아이들을 키우는 곳이다. 어려서 구걸하며 살다 보니 보육원 아이들의 평균 키는 세 살 밑의 또래와 비슷하다. 고아가 많다는 것은 북한이 선전처럼 인민의 낙원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 주는 생생한 증거다. 그래서인지 김정일은 보육원을 찾아간 적이 없고 관심을 가진 적도 없다.
하지만 김정은은 아버지 시대의 치부를 수용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대동강 기슭의 노른자위 땅에 보육원도 건설했다.
또 김정은은 고아를 돌보라는 지시를 전국에 하달했다. 중국에서 구걸하던 꽃제비들이 재작년 초부터 거의 보이지 않기에 알아보니 “북한 보육원에서 이젠 밥은 먹여 준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김정은이 요즘 고아는 물론이고 홀몸노인에게까지 관심이 크다니 이런 점은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다. 물론 그 순수성엔 의심이 간다. 김정은이 보육원에 처음 간 때는 공교롭게 장성택을 처형하고 한 달 남짓 지난 지난해 2월 3일이다. 따뜻하고 인자한 지도자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절실할 때였다.
하지만 쇼라고 해도 좋다. 그 덕분에 전국의 꽃제비들이 따뜻한 밥과 숙소를 얻을 수 있다면 다른 쇼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차역에 방치된 꽃제비들의 시체 앞에서 주먹을 쥐어 본 사람이다. 석탄재 속에서 자고 나온 꽃제비 아이들에게 밥을 나눠주며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다. 그래서 솔직한 심정은 이렇다. “좋다. 이용해도 좋으니 애들을 제발, 죽게 내버려두지 말라. 그리고 진짜로 사랑을 주면 좋겠다.”
김정은은 아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김정은 지시로 갓 개장한 송도원야영소에 갔던 원산 보육원 아이들이 야영이 끝난 뒤 옷과 배낭은 물론이고 신발과 양말까지 다 바쳐야 했었던 것을. 다음 차례로 갈 아이들이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누구 앞에서나 “원수님의 배려로 부러운 것 없이 지낸다”고 줄줄 대답하는 아이들이 실은 선생만 보면 겁에 질려 입을 다문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솔직히 배가 고파요”라는 고백을 들으려면 최소한 며칠간 친분이 쌓여야 한다. 그나마 김정은이 찾은 평양 보육원은 지방보다 사정이 훨씬 낫다. 이곳은 평양 꽃제비만 받기 때문이다. 꽃제비마저 차별을 받는 셈이다.
현재 이뤄지는 보육원 지원도 김정은의 관심이 식는 순간 끝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꽃제비는 또다시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개인적으론 김정은에게 꼭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과거 탈북했다 체포돼 북송된 뒤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이들 중엔 18세 미만의 미성년자 고아들도 있다. 김정은이 보육원에서 눈물을 흘릴 때 어느 수용소에선 철모르는 고아가 채찍 아래 죽어가고 있다. 당신은 정치범이 된 그 고아들을 위해서도 울어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