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
아름다움 그 이상의 아름다움
‘뷰티 비욘드 뷰티(아름다움 그 이상의 아름다움)’를 주제로 하는 이번 전시는 오드리 헵번의 배우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배우 이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나눔을 실천한 삶을 조명하여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EDITOR 곽은영 COOPERATION (주)키라임미디어,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
‘오드리 헵번, 뷰티 비욘드 뷰티’ 전시회에는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 소유의 물품뿐 아니라 로마, 밀라노, 미국 등지에 있는 개인 소장가들의 소장품들이 국내에서는 처음 공개된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해외에서 열린 오드리 헵번 전시회 형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타이틀에서부터 작품 구성, 스토리, 텍스트까지 모든 것을 새롭게 기획하고 DDP의 독특한 전시 환경에 맞춰 전시 구성까지 새롭게 기획했다.
내성적이었던 아이, 오드리 헵번
오드리 헵번은 어린 시절 내성적인 아이였다. 5살이 되던 해 그녀는 영국 기숙사 학교로 가게 되는데, 또래 아이들에 비해 내성적인 성향을 갖고 있던 딸을 위한 어머니의 배려였다.
5년간 학교생활을 하며 발레 레슨을 받은 오드리는 음악과 춤에 대한 관심과 꿈을 갖게 된다. 오드리 헵번은 어린 시절 기숙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했지만, 이는 오히려 그녀에게 독립심을 키워준 계기가 되었다.
내성적인 오드리 헵번은 영어도 못하고, 운동도 잘 못하는 데다 통통하기까지 해서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곤 했다. 하지만 발레를 배우고 영어도 익숙해진 후 인기 있는 아이로 거듭나게 된다. 오드리 헵번은 어린 나이였음에도 많은 것을 극복하며 발레리나가 되는 꿈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꿈을 한창 키워가고 있을 10살 무렵, 그녀는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39년 9월 오드리 헵번이 10살이 되던 무렵,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고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이었다.
어머니 엘라는 오드리 헵번과 네덜란드로 갔지만, 이때 아버지와 작별한 오드리 헵번은 그 후 25년간 아버지를 볼 수 없게 된다. 독일군의 네덜란드 침공 후 오드리 헵번은 여느 13살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학교를 다니며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72명의 네덜란드인이 사형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독일군은 레지스탕스 색출을 명목으로 고위 관직자들을 잡아가게 되고, 이때 오드리를 끔찍이 아끼는 이모부도 잡혀가 사형에 처해진다. 이 사건은 오드리 헵번에게 엄청난 충격과 두려움을 주게 되고 그녀를 가족 잃은 충격과 깊은 절망에 빠뜨린다.
게다가 오빠 알렉산더와 이안마저 독일군에게 끌려가자 어머니 엘라와 오드리 헵번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진다. 배우가 되었을 때 그녀는 영화 ‘안네의 일기’에 캐스팅됐는데,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녀의 기억 속에 고통스럽게 자리 잡고 있어 캐스팅도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시절의 시련은 오드리 헵번을 발레에 더욱 열중하게 하는데, 그녀에게 있어 발레는 전쟁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전쟁 속의 희망이었던 유니셰프의 구호
오드리 헵번은 전쟁 동안 집에 숨어 수개월 동안 튤립뿌리만 먹으며 지냈고, 물로 연명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때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침대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 과거의 좋은 추억, 상상들로 2차 세계대전 때부터 직접 그녀가 그린 그림은 이번 전시회에도 전시돼 있다.
전쟁이 16살 나이의 오드리 헵번에게 남긴 것은 천식, 황달, 빈혈, 부종과 같은 질환이었고, 그 병들의 일부는 그녀가 평생 안고 가야 했다. 오드리 헵번과 가족은 전쟁 동안 유니세프 구호 식품 및 각종 생필품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녀의 삶을 바꾼 ‘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은 발레리나가 되길 원했지만 170cm에 달하는 큰 키는 그녀의 꿈에 제약이 되었다. 오드리 헵번은 암스테르담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파리와 런던에서 연극과 영화에 단역배우로 출연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1953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로마의 휴일’에 캐스팅된 오드리 헵번은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고, 그녀의 스타일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단발 컷은 이제 하나의 바이블이 되었다.
이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맺게 된 프랑스 디자이너 지방시와의 인연은 그녀에게 ‘헵번 스타일’이라는 패션세계를 만들어줬다. 당시는 글래머인 마릴린 먼로와 같은 여배우들이 각광받던 때였는데, 로마의 휴일을 통해 짧은 헤어에 마르고 풋풋한 이미지의 오드리 헵번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본 전시는 배우로서의 삶보다 가정에 충실하려 노력한 오드리 헵번의 노력을 조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한 때문인지 오드리 헵번은 늘 안정적인 가정을 원했다. 그녀는 배우로서의 명성보다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삶을 원했다.
그러나 그 결혼 생활도 13년 만에 이혼으로 막을 내리고, 이후 오드리는 진정한 소울 메이트인 로버트 월더스를 만나지만 다시는 결혼하지 않는다. 로버트 월더스는 오드리 헵번을 만난 이후 그녀의 구호 활동을 도왔으며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곁을 지켰다.
세계의 소외받는 어린이들의 엄마가 되다
오드리 헵번은 배우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엄마였고, 그 역할에 충실하려 무척 애썼다. 그리고 두 아이가 크고 나자 연기생활을 은퇴하고 어린이들을 위해 유니세프 대사가 되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유명인사들이 자선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 때였다.
그녀는 로버트 월더스와 유니세프 대사로서 인권운동과 해외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며 아동 인권 보호를 위해 헌신했다. 이때 오드리 헵번이 지은 미소가 유명한데,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외모나 나이가 아니라 내면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줬다. 특히 1992년 암 투병 중임에도 소말리아에 방문해 봉사활동을 한 일화는 유명하다.
티켓당 1달러씩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에 기부
오드리 헵번 사망 후 그녀의 두 아들인 션 퍼레어(Sean Ferrer), 루카 도티(Luca Dotti), 그녀의 지인 로버트 월더스(Robert Wolders)는 ‘오드리 헵번 어린이 재단(Audrey Hepburn Children’s Fund)’을 세우고 구호가 필요한 제3국 및 미국 내의 학교와 어린이 단체 등 다양한 국가와 단체에 도움을 주고 있다.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 회장이자 그녀의 둘째 아들인 루카 도티(Luca Dotti)는 오드리 헵번의 진정성 있는 삶을 잘 전달하기 위해 사전 방한해 전시회 개막을 함께 준비했는데, “세상과 더불어 살았던 오드리 헵번의 인간적인 따뜻한 삶을 대중들과 함께 나누고 현실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전시를 총감독한 최요한 감독은 “오드리 헵번은 어여쁜 배우로만 여겨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물로 그녀가 살아온 삶은 화려한 스타의 삶이 아닌, 격동의 시대에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은 한 여성의 몸부림이었다”며 “가족과 함께하고 아프리카에서 나눔의 삶을 살았던 휴머니즘 가득한 그녀의 아름다운 인생 스토리를 통해 관람객들이 가족의 소중함, 나눔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름다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드리 헵번, 뷰티 비욘드 뷰티’ 전시회는 티켓 구매 시 1달러씩 오드리 헵번 어린이 재단에 기부돼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된다.
시간 월~목요일, 일요일 11:00~19:00, 금~토요일, 공휴일 10:00~22:00
장소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알림터 알림2관
관람료 성인 13,000원, 청소년 10,000원, 초등학생 이하 8,000원
주최 ㈜키라임미디어 /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
문의 1544-1555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취재 곽은영 기자(kss@egih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