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감으로 승진해 서울역파출소 떠나는 장준기 경위
서울역 노숙인의 ‘대부’로 불리는 장준기 경위가 15년간 근무했던 서울역파출소를 떠난다. 경감으로 승진한 장 경위가 서울역을 떠나기에 앞서 9일 서울역 앞 노숙인들과 얘기를 나누며 밝게 웃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왜요? (단속) 건수 잡으러 왔어요?”
노숙인은 경찰을 싫어했다. 경범죄 스티커를 발부하거나 기소중지된 수배자를 찾으러 온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무작정 단속하고 계도하는 게 능사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친해지면 미안해서라도 사고를 못 칠 것 같았다. 장 경위는 노숙인과 소통하자는 생각에 늘 먼저 말을 걸고 주변 쓰레기를 치워줬다. 애로사항을 들어주면서 해결법이 있으면 안내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2년쯤 지났을까, 노숙인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그를 ‘큰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장 경위는 서울역에서 돌봐온 ‘동생들’의 곁을 좀처럼 떠나지 못했다. 2003년에 다른 파출소로 발령받아 근무할 때도 서울역에 와서 그들을 돌봤고 1년 만에 다시 서울역파출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총 15년을 근무했다. 8년 전쯤부터는 매주 금요일마다 노숙인에게 무료로 이발을 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그를 거쳐 간 노숙인은 약 1500명. 이 중 일부는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특히 노숙인 김모 씨(2013년 사망·당시 46세)와의 인연은 잊을 수 없다. 알코올의존증이 심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력이 있었다. 장 경위는 그를 목욕시켜 주면서 각별한 추억을 쌓았다.
김 씨는 막걸리를 마시다 다른 노숙인을 폭행했고, 구속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출소를 2, 3개월 앞둔 2013년 그는 폐암으로 형 집행정지를 받아 병원에 입원해 산소호흡기를 써야 했다. 보고 싶어서 찾아가자 김 씨는 “물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고 싶다”고 했다. 김 씨는 “마지막으로 형님이 사주는 물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장 경위는 얼른 매점에서 물을 사서 건넸다. 김 씨는 기쁜 표정으로 벌컥벌컥 마셨고, 다음 날 숨졌다.
노숙인들은 저마다 아픈 사연을 갖고 있었다. 노숙인 김모 씨는 50대가 되도록 자신의 호적(현 가족관계등록부)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길바닥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7세 때 경남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엄마를 잃어버린 뒤부터였다. 장 경위는 동사무소, 구청을 찾아다니며 백방으로 수소문해 호적을 만들어줬다. 김 씨는 그렇게 새로 생긴 ‘한양 김씨’의 시조가 됐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