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고전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인 ‘서경(書經)’은 중국 고대 하은주(夏殷周) 시절 왕실에서 일어난 군주와 신하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서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왕을 성군으로 키우고 보좌한 재상들의 활약은 눈부시고 흥미롭다. 그런 재상 중 한 사람이 이윤(伊尹)이다.
이윤이 활동한 시절은 하나라가 망하고 은나라가 새로 선 즈음이다. 은나라를 세운 이는 탕왕(湯王)이다. 탕왕은 이윤을 재상으로 선발했다. 탕왕이 죽은 후 이윤은 그의 맏아들 태갑(太甲)을 보좌했다. 하지만 태갑은 행동이 포악했고 이윤의 가르침을 좀처럼 따르지 않았다. 이윤은 태갑을 바라보며 “나쁜 습성이 이미 성품이 됐다”고 크게 한탄하며 태갑을 왕위에서 끌어내려 멀리 보내 근신하며 뉘우치게 했다. 3년이 지난 뒤 이윤은 태갑을 모셔다 다시 왕위에 올렸다.
태갑을 왕으로 모셔놓고 이윤은 가르침을 베풀었다. “높은 데를 오를 때는 반드시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이 하시고, 먼 데를 나갈 때는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이하십시오.” 잠시 근신했다가 다시 왕에 올랐으니 태갑에게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인 셈이다. 이런 태갑에게 이윤은 “한 발 한 발 나갑시다. 높은 데에 오르고 먼 데에 이르기 위해 지금 여기부터 시작합시다”라며 따뜻하고 극진하게 보살피고 격려한다.
이윤이 태갑에게 준 많은 가르침 가운데 다음의 글은 훌륭한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할 만고의 격언이다. “누군가의 어떤 말이 당신의 마음에 거슬리거든, 반드시 그 말이 도에 맞는가를 생각하십시오. 누군가의 어떤 말이 당신의 마음에 들거든, 반드시 그 말이 도에 맞지 않는가를 생각하십시오.” 이윤이 요구하는 이 가르침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마음에 거슬리지 않게 말하려고 애쓰고 기분 좋은 말을 들으면 그것이 도에 맞는지 따지고자 하지 않는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안에 따르고 배울 바가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리더라면 이런 이치를 꼭 생각하고 행해야 한다. 태갑은 본색이 어리석고 포악했지만 이윤의 가르침 덕분에 개과천선할 수 있었고 역사상 성군으로 남았다.
고연희 이화여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