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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권위 떨치고 팀 속으로… 꿈 심어주는 구단주들

입력 | 2015-01-15 03:00:00


넥센 강정호(28)는 불과 4년 전만 해도 야구 좀 하는 선수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뒤에야 그는 비로소 메이저리거의 꿈을 갖기 시작했다. 여기서의 누군가는 넥센의 실질적 주인 이장석 대표다.

2011년 시즌 중 어느 날 이 대표가 강정호를 불러 나눈 대화 한 토막은 이랬다.

“정호야, 야구 선수로서 네 목표가 뭐냐.”

“한국 프로야구 최고 유격수가 되는 겁니다.”

“목표는 크게 잡아야 한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려는 생각을 해 봐라.”

목표 설정을 새롭게 한 강정호는 이듬해부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2011년 타율 0.282에 9홈런, 63타점이었던 성적은 2012년 타율 0.314에 25홈런, 82타점으로 좋아졌다. 2013년에는 홈런은 22개로 줄었지만 타점은 96개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유격수 40홈런과 100타점(117개)을 동시에 달성했다.

그 사이 구단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2년 전부터 메이저리그 사정에 정통하고, 아시아 선수에 대한 애정도 깊은 에이전트를 찾아 강정호와 연결해줬다. 견문을 넓혀주는 방법의 일환으로 지난해에는 일본 프로야구 요코하마의 스프링캠프에 강정호를 참가시켰다. 구단의 철저한 사전 준비가 없었다면 강정호의 메이저리그행이 지금처럼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 대표는 올해 시무식에서도 선수들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오재영 문성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한현희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야수 김민성은 심기일전해 그저 그런 선수가 아닌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 5 이상을 해줬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형님 같은, 또 어떻게 보면 인생 선배다운 ‘신세대 구단주’의 모습이다.

NC 김택진 구단주도 최근 열린 시무식에서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 구단주는 영상 메시지로 보낸 신년사에서 “김경문 감독님과 영원한 캡틴 이호준 주장에게 정말 고맙다. 이호준 주장은 다시 한 번 자유계약선수(FA)에 도전할 수 있도록 올해도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NC가 짧은 시간에 강팀으로 자리 잡은 데 큰 역할을 한 베테랑 이호준에게 강한 신뢰를 표한 것이다. 이호준은 내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는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구단주들은 선수들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구장을 찾아 금일봉을 전달하며 악수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야구에 대한 열정, 선수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구단주가 늘고 있다. 비록 결실은 보지 못했지만 에이스 김광현의 메이저리그행을 허락했던 최종 결정권자는 SK 최창원 구단주였다. 최 구단주는 전임 이만수 감독과 이별할 때도 따로 식사 자리에 초대해 정중하게 재계약 불가 의사를 밝혔다.

구본준 LG 구단주는 요즘도 학창 시절 동문들과 사회인 야구를 할 정도의 야구광이다. 간섭은 하지 않지만 열정적으로 팀과 선수들을 응원한다. 두산이 스토브리그에서 FA 투수 최대어 장원준을 4년간 84억 원에 데려올 수 있었던 것도 박정원 구단주를 비롯한 오너 일가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김승연 한화 구단주는 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김성근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데려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믿음은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낳곤 한다. 구단주의 한마디, 행동 하나는 선수 개개인은 물론이고 팀의 운명도 바꿀 수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